본관은 풍양(豊壤). 초명은 준(㻐). 자는 경서(景瑞), 호는 하서(荷棲).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고, 아버지는 목사 조상기(趙尙紀)이며, 어머니는 임취(任冣)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부제학·대사성을 지낸 뒤 정조가 즉위하면서 공조참판이 되었다. 그 뒤 좌승지·승문원제조·실록청당상관·대사헌을 지내고,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민폐를 없애고 군무를 개혁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이어 지돈녕부사가 되었다가 형조판서에 올라 지경연사(知經筵事)·홍문관제학·도총관을 겸하였다. 1786년(정조 10) 우의정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하면서, 당시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부에 귀양가 있던 은언군 인(恩彦君裀)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판중추부사로 기용되었다. 『문헌비고』 편집에 관계하여 학교고(學校考) 8편을 지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하서집』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