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노직(魯直). 본관은 순창(淳昌).
1315년(충숙왕 2)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1323년 안축(安軸)·최용갑(崔龍甲)과 함께 원나라에서 과거에 응시하여 제과(制科)에 급제하고, 요양등로총관지부사(遼陽等路摠管知府事)에 제수되었다.
1330년 전리좌랑(典理佐郎)으로 있으면서 고려 종묘의 소목(昭穆)의 서차가 고제(古制)에 어긋남이 있으니 수정하여야 한다고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충혜왕 초에 정언으로 있으면서 최안도(崔安道)의 아들이 남의 글을 빌려 등제하였음과 지공거인 한종유(韓宗愈)의 부정사실을 탄핵하였다.
이에 왕이 오히려 조렴을 하옥하려 하자 박련(朴連)이 진언하여 중지되었다. 뒤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이어 밀직부사에 제수되었는데, 사의(司議)로서 추부(樞府)에 들어감은 이전에 없었던 일이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