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선(汝善). 할아버지는 최동립(崔東岦)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최진남(崔鎭南)이다.
1699년(숙종 2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705년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이어 1710년에 다시 지평이 되고, 이 해 탄핵을 받고 체차(遞差)되었다. 1714년 다시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는데, 그는 삼남지역의 재해를 철처히 조사하여 세를 감면해 줄 것과 삼정의 폐해의 하나인 백골징포의 부당성을 들어 개정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다시 장령이 되었고, 이 때 대궐에 괘서가 붙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수문장의 책임을 물어 파직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오히려 탄핵을 받고 파직된다. 그 뒤 풍병을 앓아 더이상 관직을 맡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