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지(徽之). 최선보(崔善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충(崔忠)이고,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典書) 최윤문(崔潤文)이며, 어머니는 어백유(魚伯游)의 딸이다.
1399년(정종 1)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09년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1414년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되었는데, 이 때 질이 나쁜 종이를 납궐(納闕)한 죄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1432년(세종 14) 사간원좌헌납이 되었다. 이듬해 상정색녹사(詳定色錄事) 한유린(韓有隣)과 책봉도감녹사(冊封都監錄事) 허완(許完)에게 7등급을 초과하여 참직(參職)을 제수하자, 3등급을 초과할 수 없는 초천법(超遷法) 규정을 들어 이의 시정을 상소하였다.
누천(累遷)하여 성균관사예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퇴거하여 경사를 읽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뒤에 수직(壽職: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은전으로 주는 벼슬)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458년(세조 4) 겨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