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영천군수, 청풍부사,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한경(漢卿)
정수재(靜修齋)
이칭
완릉군(完陵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6년(광해군 8)
사망 연도
1693년(숙종 19)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한성부좌윤
정의
조선 후기에, 영천군수, 청풍부사,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경(漢卿), 호는 정수재(靜修齋). 아버지는 이조판서 최혜길(崔惠吉)이며, 어머니는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의 결과 대신들의 아들이 심양(瀋陽)에 볼모로 갈 때 잡혀갔다가 1642년 최명길이 명나라와 통교한 죄로 심양에 잡혀오자 세 차례나 청군(淸軍)을 찾아가 변호하였다. 그 뒤 1645년 최명길이 풀려나 함께 귀국하였다.

1651년(효종 2) 생원이 되어 남별전참봉(南別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그 뒤 1666년(현종 7) 음보(蔭補)로 종부시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670년부터 배천군수·사복시첨정·영천군수를 역임하였다.

1681년(숙종 7) 청풍부사에 이르러 완릉군(完陵君)에 습봉(襲封)되었고, 그 뒤 한성부좌윤이 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저서로는 『정수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서계집(西溪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김갑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