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거산성(八莒山城)이 있는 함지산에서 뻗어나간 여러 줄기의 구릉상에 크고 작은 고분이 무리〔群〕을 이루고 있으며, 157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에서 제56호분이 1975년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구암동 고분군의 성격의 일단이 밝혀지게 되었다. 2018년 8월 7일 360기의 봉분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제56호분은 밑지름 18m, 높이 4.5m의 본분(本墳)과 지름 10m, 높이 2.6m의 북분(北墳)으로 된 쌍분(雙墳) 형태로 봉분(封墳)을 형성하고 있는 돌무지〔積石〕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부구조는 세장(細長)한 장방형의 구덩식돌덧널〔竪穴式石槨〕으로, 본분과 북분에 각각 으뜸덧널〔主槨〕과 딸린덧널〔副槨〕을 서로 평행되게 배치한 여러덧널식〔多槨式〕이면서 으뜸·딸린덧널식〔主副槨式〕인 돌무지무덤이다. 두 덧널의 거리는 남북으로 약 10여m로서 대립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한 칠곡고분군은 주변의 대구 또는 경산지방 고분군의 봉분이 토축인데 비해 돌무지로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유형의 묘제는 이른바 돌무지돌덧널무덤〔積石石槨墳〕으로 불리고 있다. 껴묻거리〔副葬品〕는 대부분 도굴당했으나 일부가 잔존해 있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본분의 으뜸덧널에는 동침(東枕)된 사람뼈 조각 일부와 함께 금동허리띠조각〔金銅銙帶片〕·손칼 등의 철기류와 재갈 등의 마구류, 굽다리접시·유대발형토기(有臺鉢形土器) 등의 토기류가 부장되어 있다. 딸린덧널에는 말띠드리개〔杏葉〕등의 마구류 약간과 굽다리접시·짧은목항아리〔短頸壺〕·유개사이부호(有蓋四耳附壺) 등이 다수 부장되어 있고, 조개껍질도 일부 출토되었다.
북분의 으뜸덧널에서는 금동관조각〔金銅冠片〕·쇠투겁창조각〔鐵矛片〕·토기조각 약간이 조사되었다. 딸린덧널에서는 쇠손칼조각, 철제은장(鐵製銀裝)의 말띠드리개 및 말띠꾸미개〔雲珠〕등의 마구류와 토기로는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짧은목항아리가 출토되었다.
구암동고분군에서는 봉분 돌무지 내에 유대발형토기의 기신부(器身部)가 부장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 토기의 굽다리〔臺脚〕부분이 본분의 으뜸덧널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매장 당시 의도적으로 이 토기를 깨뜨려서 따로따로 부장한 것으로서, 그 당시 장송의식(葬送儀式)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56호분과 같은 돌무지돌덧널무덤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가 거의 없는 특이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로 연결된 쌍분형태의 적석부 내에 두 돌덧널이 포함되어 있는 것 역시 신라·가야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배치양식이다. 그러나 원형의 적석봉분이나 쌍분 축조와 같은 특징은 경주의 신라계 무덤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들은 낙동강 동안지역의 양식으로 묶일 수 있는 지역적 특성도 가지고 있으나 대체로 6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는 경주지역 토기양식의 유입도 많아진다.
구암동 고분군은 출토유물으로 볼 때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라의 영향 안에 있던 지역집단 지배계급의 고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