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선제는 광주 대촌(大村)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뒤 세자빈객(世子賓客)과 예문관제학 등을 지냈고, 문종 때는 정인지(鄭麟趾) 등과 『고려사(高麗史)』 편찬에 참여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와서는 후진 양성과 향악을 통한 향풍 교화 활동을 하였다. 강진 수암서원, 화순 오현당, 죽산사에 배향되었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가묘(家廟)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불천위(不遷位)가 된다. 3칸의 가묘에 1칸을 더 만들어 불천위를 모시거나, 따로 별묘를 만들어 이곳에 불천위를 모시기도 한다. 이때 별묘를 부조묘라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크기로 전퇴에 마루를 둔 겹처마 맞배집이다. 공포는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장식성이 가미된 이익공이다. 가구(架構)는 1고주(高柱) 5량(樑)으로 되어있다. 막돌초석 위에 정면만 원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문은 쌍여닫이 띠살문이다.
부조묘는 현재 포충사 뒤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지만 원위치에서 50m 왼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부조묘 뒷산 언덕에 이선제의 묘와 묘비, 50여m 떨어진 길가에 신도비가 있다. 마을 앞에는 이선제가 심었다고 하는 괘고정(掛鼓亭)이라 불리는 수령 600여년의 노거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