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여옥(汝沃), 호는 금사(錦沙). 화순 출생. 아버지는 참군(參軍) 하대표(河大豹)이며, 어머니는 경주배씨(慶州裵氏)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 한성시(漢城試)에 응시하기 위하여 김포현관(金浦縣館)에 들렀다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벽상(壁上)에 「대인륜시(大人倫詩)」를 남기고 과장(科場)에 나가지 않았다. 또한, 폐모론의 극창자들을 탄핵하였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율봉찰방(栗峰察訪)에 이어 전적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66세의 노구로 후방에서 의병을 지휘하여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친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거빈탄(去邠歎)」의 시를 지어 통곡하고 파병(罷兵)하였다.
향리에 돌아와서 비분한 한을 시문으로 달래면서 항상 이의 설욕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저서로는 『금사유집(錦沙遺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