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 유학 홍천민(洪天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서용(洪瑞龍)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홍명현(洪命顯)이며, 어머니는 참판 정용(鄭鎔)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교·정언을 지내고, 1642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3년 예조정랑, 이듬해 해운판관이 되었다.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1647년부터 수찬·헌납·이조좌랑·교서관교리를 지내고, 1649년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1650년(효종 1) 도청(都廳)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그 해 해서지방의 암행어사가 되었다. 1654년부터 보덕·사간·동부승지·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거쳐, 그 뒤 승지·대사성·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68년 예조참판·개성유수, 1670년에 대사헌이 되었다. 현종이 죽자 빈전도감제조(嬪殿都監提調)가 되고, 숙종 때 제학·좌참찬·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북정집』이 있고, 시호는 정정(貞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