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성화명 도로수축시주목록 암각기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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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성화명도로 수축 시주목록 암각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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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 능성현의 남쪽 도로 수축 사업에 시주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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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485년 능성현의 남쪽 도로 수축 사업에 시주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금석문.
내용

1995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1485년(성종 16, 성화 21)에 능성현(綾城縣)의 남쪽 도로 수축 사업에 시주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전체 가로 150㎝, 세로 80㎝ 정도의 구획 속에 글자 크기는 5㎝쯤으로 25행 180여 자에 달하는 내용을 음각으로 새겼다.

여기에는 “知□」成化二十一年乙巳四月初一日綾城」縣南距五里亭前仇叱健硯」道路修築施主目錄」大施主」將仕郞具龍淵妻佛□」曺錫命 大化主居士崔廷山」婢泉德 朴允護兩主」奴禾加 加中季」□□施主」… 蒙民化主」… 上□施主」… 刻匠」… ”라는 내용으로 성화 21년에 능성현의 남쪽 오리정 앞 구질건연까지의 도로를 수축했고, ‘大施主’, ‘大化主’, ‘蒙民化主’ 등 시주자들과 새긴이[刻匠]의 이름이 보이며, 여고리(汝古里)의 지명이 있다.

대시주 구용연(具龍淵, 1450∼1534)은 당시 36세로 본관은 능성, 자는 회견(會見), 호는 농포(農圃)이고 구득인(具得仁)의 아들이다. 효행이 뛰어났다 하며 문행(文行)이 있어 음직으로 장사랑(將仕郞)을 지냈다.

부인은 여산송씨 중인(仲人)의 딸이었다. 인명들이 모두 시주·화주·거사 등 불교적 용어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불교의 신앙 단체가 도로 수축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기문은 조선 초기 도로 수축 사업에 지방민들의 경제적 도움을 얻었다는 구체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점, 성화 21년이라는 절대연기가 명기된 점, 오리정 및 구질건연, 여고리와 같은 지명이나, 시주한 인물들의 이름 및 시주의 등급 등이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방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능성구씨세보(綾城具氏世譜) -권1 시랑중파(侍郞中派)-』
『문화재도록(文化財圖錄) -도지정문화재편(道指定文化財篇)-』(전라남도, 1998)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조사보고서(和順成化銘道路修築施主目錄岩刻記文調査報告書)』(김동수, 전라남도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1995)
『전남금석문』(전라남도편, 1990)
『향토문화유적조사』7(향토문화개발협의회, 1986)
『화순군지(和順郡誌)』(화순군지편찬위원회편,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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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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