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사위로, 여섯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종실.
이칭
이칭
창성위(昌城尉)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802년(순조 2)
본관
창원(昌原)
주요 관직
부마
관련 사건
신유사옥
정의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사위로, 여섯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종실.
개설

본관은 창원(昌原). 이조판서 황흠(黃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서하(黃瑞河)이고, 아버지는 호조참판 황재(黃梓)이며, 어머니는 권욱(權煜)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영조의 제10녀 화유옹주(和柔翁主)와 혼인하여 창성위(昌城尉)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영조가 죽자 애책문(哀冊文)을 지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부터 1793년에 이르기까지 17년 사이에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 1회,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3회, 동지정사 1회, 성절 겸 사은정사(聖節兼謝恩正使) 1회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청나라 수도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이 일어나자, 앞서 1784년(정조 8) 동지 겸 사은정사로 연경에 갔을 때 함께 갔던 이승훈(李承薰)이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천주교관계서적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사로서 이 사실을 몰랐다 하여 책임추궁을 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선원계보(璿源系譜)』
집필자
이원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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