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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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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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1년의 4계절 중 네 번째인 가을과 봄 사이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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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년의 4계절 중 네 번째인 가을과 봄 사이의 계절.
내용

기상학적으로는 보통 12월에서 2월까지를 말하나 기온이나 강수량 등 여러 기후요소의 변화를 기초로 보면 겨울의 시작과 끝, 겨울의 길이 등은 장소에 따라, 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절기상 겨울의 시작은 입동(立冬, 11월 8일)이고 끝은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 2월 4일)이다. 자연 계절로는 초겨울(일평균기온이 5℃ 이하이고 일최저기온이 0℃ 이하), 엄동(嚴冬, 일평균기온이 0℃ 이하이고 일최저기온이 -5℃ 이하)과 늦겨울(일평균기온이 5℃ 이하이고 일최저기온이 0℃ 이하)로 구분된다.

겨울의 시작은 북부 지방에서 빠르고 끝도 북부 지방일수록 늦다. 초겨울은 서울이 11월 27일, 대구가 11월 28일에 시작된다. 그리고 제주는 초겨울에도 일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엄동은 서울이 12월 14일부터로 대구보다 2주일 빠르며 끝나는 날은 대구보다 3주일이나 늦다. 늦겨울은 서울이 2월 24일부터 3월 18일, 대구가 2월 6일부터 3월 14일까지로 2주일 가까이 대구가 길다.

겨울철 아시아 대륙 내부에 발달한 시베리아 고기압(시베리아 기단)은 동부 아시아를 지배한다. 기압의 배치는 전형적인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으로 강대한 시베리아 고기압으로부터 오호츠크해 부근의 저기압을 향해 북서계절풍으로 불어 나온다. 북서 계절풍은 기압차가 클수록 강하며 한랭건조한 바람이기 때문에 기온은 저하한다.

특히, 기온 저하가 클 때 한파(寒波)라 하고 한파는 겨울 동안 여러 번 내습하여 혹한의 날씨를 보인다. 한파가 후퇴하면 기온이 상승하고 저기압이 통과하기도 하며 이른바 삼한사온(三寒四溫)의 현상이 되풀이된다.

삼한사온은 결국 시베리아고기압의 주기적 성쇠에 의한 기온 변화이다. 삼한에 해당하는 동안은 한대의 추위를 무색하게 하는 혹한의 날씨를 보인다.

최한월(最寒月)인 1월 평균 기온의 분포를 보면 중강진 -20.8℃, 서울 -3.5℃, 서귀포 6.0℃로 남북 지역의 차는 26.8℃에 달한다.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0℃의 등온선은 동해안의 포항 북부에서 울산·마산·여수·목포를 지나고 있어 난대림(暖帶林)과 온대 남부림의 경계를 이루어 식물 분포·농작물 분포 등 중요한 경계가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우리 나라의 혹한은 이러한 평균치보다 절대치로 그 강도를 실감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저극기온(低極氣溫)을 나타내는 한극(寒極)은 중강진을 중심으로 하는 개마고원 일대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강진에서는 -43.6℃(1933.1.12.)의 기록을 남기었으며 강계·42.4℃(1927.1.23.), 혜산진 -42.0℃(1915.1.30.) 등 많은 기록이 있다.

1960년 이후 남한에 있어서의 최저기온은 양평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1981년 1월 5일에는 양평 -32.6℃, 충주 -28.5℃, 원성-27.6℃를 기록하였으며, 1983년 1월 5일 양평은 또다시 남한의 한극을 나타냈다. 이러한 저극기온은 소한을 전후하여 나타나므로 이것을 소한추위라 하며, 실지로 더 춥다고 생각되는 대한보다 소한이 더 춥다.

이것은 겨울철에 한파가 내습하는 삼한(三寒)의 특이일(特異日, singularity)의 하나이다. 한파의 특이일은 12월 29일(세모한파), 1월 6일(소한한파), 1월 16일(대한한파), 1월 31일, 2월 12일, 2월 21일, 3월 7일(마지막한파), 3월 25일(되돌이한파 또는 꽃샘추위)이 있다. 그 사이에 사온에 해당하는 온난특이일(溫暖特異日)이 끼어 추운 겨울도 비교적 지내기 쉽게 한다.

겨울철의 강수량은 4계절 중 가장 적어 연강수량의 5∼10%에 불과한 건계(乾季)이며 겨울철 강수는 대부분이 눈으로 내린다. 가장 적설량이 많은 지역은 울릉도로서 지금까지 최심기록은 294㎝였다.

태백산맥의 오대산·대관령·설악산 등은 우리 나라 다설 지역의 하나로 매년 1m 이상의 적설을 기록하며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막는 일이 빈번하나 스키·등산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겨울은 이와 같이 춥고 강수량도 적어 식물이나 농작물이 자라지 못한다. 사람도 기후의 영향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크게 받는다.

한국인이 우리 기후 환경으로부터 받는 쾌적도(快適度, comfort index)나 스트레스를 데르중(Terjung,W.H.)의 방법으로 고찰하면 여름 더위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보다 겨울의 추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더 커서, 겨울한랭도가 쾌적도를 좌우함이 알려졌다. 지역적으로 겨울이 따뜻한 남부 해안 지방이 쾌적도는 가장 높다.

<화개월령 花開月令>에 나타나는 겨울의 꽃으로는 동백과 매화가 있다. 동백나무는 겨울이 비교적 따뜻한 남부의 해안·도서 지방이나 울릉도 지방에서 자생한다. 동백은 동백(棟柏) 또는 동백(冬柏)으로 쓰며, 산다(山茶) 또는 춘(椿)으로 쓰기도 한다.

≪유양잡조 酉陽雜俎≫에 ‘산다’ 는 키가 크고 꽃의 크기가 치(寸)에 이르며 색깔은 붉고 12월에 핀다고 기록되어 있고, <본초 本草>에 ‘산다’ 는 남방에 나고 잎은 차나무를 크게 닮고 두꺼우며 능(稜)이 있고 한겨울에 꽃이 핀다고 되어 있다.

정약용(丁若鏞)은 “‘산다’는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르면 윤기가 나고 아름다워서 부인들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울과 같이 겨울 기온이 낮은 곳에서는 노지(露地: 지붕이 덮여 있지 않은 땅)에서 월동할 수 없으므로 화분에 심기도 한다. 경상남도의 거제도, 전라남도의 돌산도·흑산도 및 거문도, 충청남도의 서천과 경상북도의 울릉도 등지에는 지금도 동백나무 자생림이 우거져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窺巖)에 동매(冬梅)가 있으며 한겨울에 꽃이 핀다. 장미과의 소교목인 매화나무는 매실(梅實)이라고 불리며 중국 원산으로 관상용 또는 과수로서 심어진다. ≪매보 梅譜≫에 조매(早梅)는 동지 전에 피므로 조(早)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이처럼 매화는 한겨울에 그 지조를 나타내고 아울러 초봄까지 단장하는 꽃이다.

오리나무류의 꽃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봄바람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겨울 찬바람에 꽃망울을 틔운다. 수꽃의 이삭은 길게 늘어지고 암꽃의 이삭은 긴 타원형이며 2월말에서 3월초에 피어난다. 오리나무류 중 중요한 것으로 오리나무·물오리나무·산오리나무 등이 있다.

오리나무의 잎은 타원형이고 물오리나무의 잎은 거의 둥글고 엽저(葉底)가 심장형이며 수피(樹皮)는 적갈색을 띠며 거칠다. 산오리나무는 물오리나무와 매우 닮았으나 엽저가 설형(楔形 : 쐐기 모양)이고, 수피는 회흑색을 띠며 매끈한 편이다.

우리 나라의 산과 들에는 오리나무 종류가 많이 자라고 있다. 이들 나무의 꽃은 얼른 보기에는 꽃처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다.

겨울과 봄의 계절의 전환점에 있는 꽃으로는 풍년화가 있다. 이것은 일본산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정원수로 심고 있으며 선명한 노란색의 꽃은 봄을 가장 빨리 알리는 꽃의 하나이다.

겨울에 피는 노랑꽃의 납매(臘梅: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는 중국 원산으로 향기가 있고 쓸쓸한 겨울의 풍경에 어울린다.

남쪽 도서지방에서 서식하는 팔손이나무는 상록의 활엽관목인데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고 두꺼우며 표면에는 광택이 있다. 화분에 심어져서 꽃집에 흔히 진열되는 것이다. 흰 꽃이 초겨울에 피고 둥근 열매가 다음해 5월쯤에 익는다.

만병초는 철쭉과에 딸린 상록활엽관목으로 잎이 긴 타원형이며 잎의 가장자리는 뒤로 젖혀졌고 혁질(革質: 식물의 표피 등에서 볼 수 있는 가죽과 같은 단단한 물질의 성질)이다. 표면에는 광택이 있고 잎 뒤에는 성상모가 매우 빽빽히 나 있다.

만병초의 흰꽃은 여름에 피지만 이 나무는 높은 산 숲 속에 나서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이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강한 기운이 약이 된다 하여 많이 이용되어 그 수가 크게 줄어 들었다.

겨울에 푸르름을 지니고 있는 것 중에는 겨우살이가 있다. 상록의 기생(寄生)관목인데 잎이 두껍고 긴 타원형이다. 가지가 Y자형으로 마주 갈라지는 특성이 있다. 참나무류·오리나무·팽나무·버들·매나무 등의 나뭇가지에 뿌리를 내려 기주(寄主: 기생 생물이 기생하는 동물 또는 식물)로부터 양분을 얻어 살아간다.

기주·수목의 잎이 달려 있을 때에는 겨우살이의 존재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나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다.

소나무는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이라 해서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백목의 왕(百木之王)으로 취급되었다. 대나무와 더불어 굳은 절개를 지닌 것으로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했으며 추운 겨울에 그 절개를 알아볼 수 있다 하여 세한지송백(歲寒知松柏)이라 했다.

소나무는 우리 나라 산야에 넓게 분포해 있으며 다만 이북의 고산·고원 지대에는 없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쓰임새 많은 목재자원이었고 또 시가와 그림의 소재로서, 풍치수로서의 높은 가치를 지닌다. 소나무와 크게 대조를 이루는 것에 떡갈나무가 있는데 이것은 잎이 크고 겨울에는 푸르름을 잃어버린다.

낙엽이라는 조락(凋落)에 인생의 무상을 관조하였고, 만물 윤회의 생존관을 되새겨볼 수 있는 겨울철의 산은 우리 국민에게 값진 도장(道場)이 되었던 것이다.

사과나무·배나무·복숭아나무 등 과목을 기르는 농가에서는 겨울철에 전지(轉地)작업을 한다. 토종벌을 가진 집에서는 꿀을 뜨고 벌통의 보온에 신경을 쓴다. 도토리묵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인정도 겨울철의 습속이다.

겨울의 세시풍속은 음력으로 10월부터 12월에 해당된다. 10월에 들어서도 농사의 마무리는 계속되지만 그동안 파종기·성장기·수확기를 지나 겨울은 저장기에 접어든다. 겨울철에 꼽을 수 있는 명절은 동지(冬至)이다. 그러나 각 달마다 소소하게 고사나 큰 굿을 지내기도 한다.

10월은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다. 절기상 소설(小雪)이 들어 있어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햇볕은 따뜻하고 소춘(小春)이라 하며 상달이라 하여 최고의 달로 여긴다. 이 달에 각종 제례가 집중되어 있다.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이 모두 10월 제천이었는데 그 전통이 이어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일은 개천절, 단군의 탄신일이 이날이라는 말이 오랜 민간 전승으로 전해온다.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大倧敎)에서는 10월 3일에 대제를 행하고 정부에서도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여 국경일로 지켜오고 있다.

10월의 첫 오일(午日)을 말날이라 하여 팥을 넣은 시루떡을 만들어 외양간에 놓고 고사를 지내 말의 무병을 빈다. 그러나 병오일(丙午日)에는 지내지 않는다. 병(丙)이 병(病)과 음이 같으므로 말의 병을 꺼리기 때문이다.

말날 중에서도 무오일(戊午日)을 상마일(上馬日)로 쳤는데 그것은 무(戊)와 무(茂)가 음이 같아 말의 무성(茂盛)을 기원했기 때문이다. 10월 상달에 각 가정에서는 말날이나 길일을 택하여 성주에게 제사를 지낸다.

성주신은 집안에서 가장 높은 최고의 신으로 가정의 길흉화복을 담당하는 신이기에 정성을 들여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찌며 술을 빚고 백과(百果)를 장만하여 성주제를 지낸다. 이 성주제는 주부에 의하여 간략하게 거행되기도 하지만 크게 하는 집에서는 무녀를 불러 굿을 한다.

지방에 따라서 성주제를 성주굿·성주받이굿 또는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함경도 지방에는 성주제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단군에게 제를 올리는 농공제(農功祭)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시월만곡대제(十月萬穀大祭)라 하여 신곡(新穀: 햇곡식)으로 제찬을 마련해 본향당신(本鄕堂神)에게 신당제(神堂祭)를 지낸다.

이 밖에도 이 달에 영남과 호남 지방에서는 신곡으로 성주단지(성주독·부루단지)갈기, 장광 뒤의 철륭단지갈기, 방안 시렁 위의 조상단지갈기, 큰방 윗목 구석의 삼신쌀(삼신봉지)갈기를 한다. 이들 단지에 있는 쌀을 길일을 택하여 사람들이 먹기 전에 햅쌀로 갈아넣고 묵은 쌀로는 그날 밥이나 떡을 해먹는다.

간혹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족끼리만 먹는다. 왜냐하면, 신체(神體, 성주단지·시준단지 등) 속에 있었던 쌀은 가족에게 복을 주는 신성물로서 복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 부정한 사람을 막기 위해 금줄을 대문에 달기도 한다.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시제(時祭, 또는 時祀·時享)가 있다. 4대 상까지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5대 이상의 조상들에 대해서는 묘제(墓祭)로 지낸다. 시제는 여러 파로 갈린 각 파 친족들이 한 묘전에 모여 참례(參禮)하는 날이며, 이날 많은 자손들이 모여드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묘자리가 명당일수록 후손이 발복한다고 한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이자 명절로서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고 한다. 동지는 밤이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태양 운행의 시발점이므로 이날의 행사는 정월과 상통하는 것이 많고, 또 이것은 고대역법(古代曆法)에 동지를 설날로 삼았던 풍속과도 관련이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조선 말기까지의 풍속에 관상감에서는 해마다 동짓날에 그 이듬해의 책력을 만들어 궁중에 올리면 나라에서는 백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역서의 표장(表裝)을, 상품(上品)은 황색으로 하고 그 다음은 청장력(靑粧曆)·백력(白曆) 그리고 중력(中曆)·월력(月曆)·상력(常曆) 등 여러 종류로 하였다.

책력은 모든 관원에게 차등 있게 나누어주는데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를 찍었다. 각 관청도 모두 나누어 받는 몫이 있고 각 관청의 아전들도 각기 친한 사람을 책력으로 두루 문안하는 것이 통례였다.

서울에서는, 단오날에 부채를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짓날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 이를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한다.

그러면 관원은 그 달력을 자기 출신 고향의 친지·묘지기·농토 관리인에게 나누어준다. 역시, 조선 말기까지도 동짓날 종묘에 청어(靑魚)를 천신하고 사대부의 집에서도 이를 행했다. 제주도에서는 동지 무렵이 되면 국왕에게 귤과 유자·감자(柑子)를 진상하였다.

섣달에는 납일(臘日)과 제석(除夕)을 절일(節日=명일(名日))로 삼고 있다.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 일진의 지지(地支)가 미(未)인 날. 양날)을 납일이라고 하는데 이날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납향(臘享)이다. 또, 이날 내린 눈은 곱게 받아 독에 담아 두었다가 녹은 뒤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고 의류와 책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물로 눈을 씻으면 안질을 막을 수 있고 한약을 달일 때 쓰기도 한다.

섣달 그믐날을 제석 또는 제야(除夜)라고 하며 민간에서는 까치설이라고 한다. 이날 저녁 가묘(家廟)에 세말(歲末)임을 고하는 사당제를 지낸다.

사당제는 불을 밝히고 음식을 차려놓은 다음 가주(家主) 혼자서 지낸다. 역시 저녁에 설날 세배하듯이 어른에게 절을 하는데 이를 구세배(舊歲拜 : 묵은 세배)라 한다.

또, 수세(守歲)라 하여 방·뜰·부엌·문·변소 등 구석구석에 불을 밝혀두고 밤을 새운다. 이날 밤새 불을 밝히는 것은 묵은 것을 불로 데워 새로운 날(새해)을 맞는다는 뜻을 지니며 밤을 새우는 것은 잠이 영원한 잠(죽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정 무렵이면 마당에 불을 피운 뒤 청죽(靑竹)을 태운다. 청죽 마디가 탈 때에 큰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타므로 폭죽, 또는 대불놓기라 한다.

이렇게 하면 묵은 해에 집안에 있었던 잡귀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신성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수세와 마찬가지로 역시 묵은 것을 소각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송년의례이다.

궁중에서는 그믐날 악귀를 쫓아내는 나례(儺禮)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겨울철의 음식은 계절에 맞게 더운 것이 주를 이루지만 반면에 이냉치냉(以冷治冷)의 찬 음식도 즐겼다.

10월 절식으로는 고사 때의 팥시루떡이 있다. 붉은 팥시루떡은 고사에는 거의 만들지만 이때가 가장 제 맛을 낸다. 그리고 날씨가 점차 추워지기 시작하므로 난로회(煖爐會: 화롯불에 여러 음식을 지지거나 구워 먹던 모꼬지. 흔히 음력 초하룻날에 행함.)와 같은 뜨거운 음식을 즐긴다.

메밀 또는 밀가루로 빚은 만두도 이때의 시절식이다. 채소·파·닭고기·돼지고기·쇠고기·두부로 소를 넣고 피를 씌워 만두를 만든 뒤 장국에 익힌다. 특히, 밀가루 만두는 변씨(卞氏)가 처음 만들었기에 변씨만두라 한다.

두부를 가늘게 잘라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부치다가 닭고기를 섞어 끓인 연포국[軟泡湯], 어린 쑥에 쇠고기와 계란을 넣고 끓인 애탕(艾湯 : 쑥국)도 있다.

또, 쑥을 쪄서 찹쌀가루에 섞어서 떡을 만들고 볶은 콩가루를 꿀에 섞어 바른 애단자(艾團子), 찹쌀가루로 동그란 떡을 만들어 삶은 콩을 꿀에 섞어 발라 붉은 빛이 나게 한 밀단자(密團子)를 비롯하여 깨강정·콩강정 등 온갖 강정 또한 이 무렵의 시절식이다. 강정은 설날 제물이나 손님을 대접하는 세찬(歲饌: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에도 나오는 음식이다.

그러나 겨울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동을 전후해서 담그는 김장이다. 김치의 종류도 통김치·쌈김치·깍두기·동치미·겉절이·채김치·짠지 등 대단히 많은데 그 종류나 재료는 생활 정도 혹은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김장이야말로 겨울철 저장식의 으뜸으로 이듬해 봄까지 먹는다.

동지팥죽은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의 단자(새알심 또는 옹시미)를 만들어서 넣어 쑤고 시절음식으로 삼아 제사에도 쓴다. 이 무렵 생선은 청어와 명태가 제철이다. 청어는 찌개·전유어에 모두 쓰지만 구워 먹는 것이 제 맛이다. 청어구이는 밤눈 어두운 것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명태는 원산에서 많이 났기에 마른 명태, 즉 북어를 ‘원산말뚝이’라고까지 했다. 이 명태는 버릴 것이 없다는 생선이다. 비린 것을 꺼리는 사람도 북어만은 먹고 그 알은 명란젓으로, 창자는 창란젓으로 알려져 있다.

명태 조치는 임금의 수라상에도 오르던 음식이었으며, 찜 그리고 명태 순대도 일미로 꼽힌다. 명태 순대는 명태 머리와 꼬리를 쳐 버리고 내장을 뺀 뒤 갖은 양념을 한 두부와 고기소를 넣어서 순대 모양으로 쪄낸 음식이다.

메밀국수를 무김치·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냉면, 잡채와 배·밤·쇠고기·돼지고기를 썰어서 넣고 기름과 간장을 메밀국수에다 섞은 골동면(骨董麵 : 비빔국수)도 즐기는 시절식이다. 특히, 평양식의 물냉면은 이냉치냉의 겨울음식으로 애용된다. 또, 찬 동치미 국물에 국수나 찬밥을 말아먹는 것도 겨울철 별식이다.

겨울철의 명절놀이는 흔치 않다. 그러나 평소 추위를 이기기 위한 힘찬 놀이를 하며 대개는 실내 놀이가 주를 이룬다. 연날리기는 지역에 따라 섣달 중순부터 시작하여 정월 보름까지 계속되며, 부녀자들은 널뛰기로 추위를 잊는데 이 놀이는 정초까지 계속된다. 또 젊은 남자들은 축국(蹴鞠)이라는 공차기를 했다. 이 공은 큰 탄환만한 크기로 위에는 꿩털을 꽂았으며 두 사람이 마주 차는데 계속 땅에 떨어지지 않아야 잘 차는 것이다. 이 밖에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오는 도중 장치기를 하거나 논밭의 얼음판에서 팽이치기를 한다. 실내 놀이로 쌍륙·승경도 그리고 윷놀이 등을 즐겼다.

겨울철은 농사의 시기로 보면 저장기에 해당된다. 이는 농사가 끝나 온갖 생산물을 저장한다는 뜻일 뿐 아니라 인간 힘의 저장기이기도 하다. 겨울 동안 힘을 저장했다가 봄부터 다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식물과도 같다. 봄에 싹이 나와 여름이면 무성했다가 가을이 되면 소진해져 겨울이면 죽는 식물은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라 이듬해 봄이면 다시 소생하는 순환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문학에서의 겨울 또한 음력으로 10·11·12월을 가리킨다. 농촌에서의 풍속과 할 일을 노래한 가사 작품인 <농가월령가 農歌月令歌>의 10월령에서는 “10월은 ᄆᆡᆼ동이라 립동 쇼셜 졀긔로다 나모닙 ᄯᅥ러지고 곤이 서리 놉히 난다 듯거라 아ᄒᆡ들아 농경을 필ᄒᆞ도다 남은 일 ᄉᆡᆼ각ᄒᆞ쟈 집안 일 마자 ᄒᆞᄉᆡ……”라 하여 겨울이 일 년의 끝에 해당한다는 것과 쓸쓸한 겨울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11월령에서는 “11월은 듕동이라 대셜 동지 졀긔로다 ᄇᆞᄅᆞᆷ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어름 언다 ᄀᆞ을의 거든 곡식 엇ᄆᆡ나 ᄒᆞ엿ᄂᆞᆫ고 몃 셤은 환샹ᄒᆞ고 몃 셤은 왕셰ᄒᆞ고 엇마ᄂᆞᆫ 졔반미오 엇마ᄂᆞᆫ 시아시며 도디도 되야 내고 픔갑도 갑흐리라 시겟돈 쟝변리를 낫낫히 슈쇄ᄒᆞ니 엄브렁 ᄒᆞ던 거시 남저지 바히 없다……”라 하여 황량한 겨울의 풍경과 양식을 갈무리하는 겨울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12월령에서는 “12월은 계동이라 쇼한 대한 졀후로다 셜듕의 봉만들은 ᄒᆡ졈은 빗치로다 셰젼의 남은 날이 엇마나 결녓ᄂᆞᆫ고……”라 하여 한 해의 저물어 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농가월령가>에서 보여주는 겨울은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시간적인 의미와 황량한 풍경에 의한 시각적인 묘사 그리고 농촌의 생활이 겨울 준비 속에서 이루어져감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묘사되는 겨울의 계절감에 이어 겨울철 농촌에서의 투전을 적극 경계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농가월령가>는 농촌의 삶을 그대로 묘사한 반면 민요에서는 서정적으로 나타나는데 매화·대나무·소나무 등 겨울에 푸른 빛을 띠거나 꽃을 피우는 식물이 소재로 등장한다.

전라북도 익산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에는 “북풍에 단을 열러 백설은 펄펄 흩날릴제 설상에 푸른 저 장송은 천고 절개를 지켜왔고 애매한 저 매화는 미인의 태도를 띄엿도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노래에서 보여주듯 대나무·소나무·매화는 절개를 상징하는 소재였다. 그런가 하면, 눈 속에서 피는 매화는 겨울의 꽃이면서 동시에 봄을 알리는 꽃이고 또, 그 아름다움 때문에 미인의 상징이 되어 왔다.

겨울을 형상화하는 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로는 눈을 들 수 있다. 눈은 빛깔이 희고 천지를 순백으로 뒤덮는다는 점에서 순결의 상징이었다. “녹담 만설 백록담을 찾고 보니 흰 눈이 만만하여 별세계를 이루더라……”라든가, “백두산 상상봉에 눈이 오고 서리 쌓여 산도 희고 들도 희고 온갖 세상 다 희었네……”같은 것들은 눈의 흰빛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민요로 거의 전국에 걸쳐 불리는 것이다.

“눈이 온다 펄펄 사랑눈은 오도록 오늘은 더 와서 점점 쌓여라 높은 산과 얕은 산이 흰설 모자 쓰고서 마른 눈은 남게 앉어 꽃이 피었네……“같은 것도 표현에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거의 전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 노래이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가지 백화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 곳 드리고저 우리 님 보오신 후에 녹든지 말든지……”같은 것도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눈이 내려 설화가 핀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눈은 모든 것을 묻어버려 단절감이나 적막감을 드러낸다. “백설의 분분한 제 천산에는 조비절하고 만경에 인적멸하니 청송녹색의 다널이라……”는 한시를 그대로 인용해서 부르는 것이고, “설백월백 천지백하니 요내 간장은 얼음판이로다 월백설백 천지백하니 산심수심 객수심이로다……”는 전국에 걸쳐 불리는 것인데 역시 단절감으로서의 눈을 노래한 것이라 본다.

겨울의 노래 중에는 바람이 소재가 된 것도 있다. 바람은 봄바람·여름바람·가을바람·겨울바람이 각각 다른 이미지로 드러난다. 겨울의 경우, 동지섣달 설한풍이 공식화가 될 만큼 추위의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설이 펄펄 날리는데 그 자손 추울세라 덮은 데 덮어주고……”라든가, “문은 떨어져 살만 남고 벽은 떨어져 애만 남고 방은 찹아서 얼음 것고 살차고도 모진 광풍이 내 가슴에 다 들어온다……”, “동지섣달 설한풍에 문풍지가 닐닐리타령을 잘 불르는데 우리 집에 저 일색 낭군은 닐닐리타령도 못 불러……” 들은 전국에 두루 퍼져 있는 일반적인 표현으로서 겨울바람의 여러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겨울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계절이다. 기나긴 밤은 밤이 안식을 뜻한다는 일상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독수공방의 긴 밤으로 전형화된다. “동지섣달 긴긴 밤에, 앉았으니 잠이 오나 누었으니 잠이 오나 등잔불로 임을 삼고 담뱃대로 벗을 삼아 독수공방 더욱 섧다……”는 민요가 바로 그런 예인데 거의 전국에 걸쳐 불린다.

또, “동지섣달 긴긴 밤에 짓 뉘비고 소매 한동 다 뉘비고 잠 한 숨 자고 나니 저 불 끌 이 전이 없네 그래도 날이 안 새……”같은 것은 긴 겨울밤을 외로이 지내는 서글픔을 드러낸 노래로 여성들의 노동요에서 흔히 보게 되는 노랫말이다.

겨울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동물로는 기러기·부엉이 등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외롭다거나 짝을 잃었다거나 깃을 움츠리고 있다거나 하는 이미지로 사용된다.

“용두마리 우는 양은 동지섣달 외기러기 짝을 잃어 짝 찾느냐”는 외로움을 노래한 베틀노래이고, “엄동설한 캄캄한 밤 고목나무 가지에서 부헝부헝 우는 부엉이 무엇 설어 그리 우나 길이 없나 집이 없나 엄마 생각 그리운다 등을 밝혀 주마……”라는 노래는 깊은 겨울밤의 황량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부엉이 소리로 형상화하면서 외로움을 그리는 예이다.

겨울의 달은 차갑고 적막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눈 속의 맑은 달빛 사창에 비쳐 있다. 찬 등불 까물까물 불빛조차 희미한데 우리 님 오지를 않고 밤만 점점 깊어가네”라든가, “창밖에 빙천의 달이 서창 안으로 다 지도록 님이야 못 오실망정 어이 못 오시나 잠조차 가져간 님을 생각하는 네 그르지……” 등은 겨울밤의 고독한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겨울철의 절기는 동지와 세모를 들 수 있다. 명절은 즐거운 것일 수도 있지만 한 해가 끝난다는 것 때문에 시름이나 괴로움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동짓달을 잡아드니 절기는 벌써 내년이라 동지팥죽 먹고 나니 원수의 나이는 더 먹었네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는데 임은 더 하나 안 생기나……”와 같은 달거리라든가 “한 해 중에 마지막 가는 달 시집 못 간 노처녀들 우지 말어야 늙어가는 노도령 우지 마라야……” 등은 한 해가 가는데 할 일을 미처 다 하지 못한 초조감이 드러난 예이다. “섣달이나 그믐날이 닥쳐오니 빚쟁이는 빗발치듯 들어오는데 돈 줄 사람은 나 하나 뿐일세……”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가 어려움을 노래하고 있다.

고전 문학 작품으로 겨울을 노래한 것으로는 신라 시대의 향가인 <찬기파랑가 讚耆婆郎歌>나 <원가 怨歌>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눈을 등장시켜 시련이나 변화를 의미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겨울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고려 시대의 시가이다. <동동 動動>에서는 “10월에 아으 저민연 ᄇᆞᄅᆞᆺ라 다호라 것거 ᄇᆞ리신 후에 디니실 ᄒᆞᆫ 부니 업스샷다……”라고 해서 겨울이 고독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하고, “11월ㅅ 봉당자리예 아으 한삼(汗衫) 두퍼 누워 슬ᄒᆞᆯ ᄉᆞ라온뎌 고우닐 스ᄉᆡ옴 녈셔 아으……”와 같이 11월도 고독이 심화되는 달로 그려지고 있다. 이어 12월을 노래한 부분도 버림받은 고독을 노래한 것으로 해독이 되고 있다.

또, <만전춘별사 滿殿春別詞>의 “어름 우희 대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 만뎡 정두ᇚ 오늘 밤 더듸 새오시라……”는 뜨거운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 얼음을 차가운 것의 상징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상곡 履霜曲>의 “비오다가 개야 아눈 하 디신 나래 서린 석석사리 고ᄇᆞᆫ 좁도신 길헤……”는 아직도 완전한 해석의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으나 그 분위기가 겨울날 새벽의 황량한 관목숲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음산한 겨울날 숲의 분위기가 외로움을 두드러지게 형상화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조의 시조에서 겨울을 그린 것으로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 江湖四時歌>가 있다. “강호에 겨울이 드니 눈 깊띄 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옷슬 삼고 이 몸이 칩지안임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는 겨울을 추운 계절로 묘사는 하지만 그것을 진정한 삶의 실상이라기보다는 유교적 이념을 형상화하기 위한 시련의 도구로 삼고 있다.

또,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에서도 눈이나 얼음 등의 겨울을 묘사해 주는 자연이 나오지만 그 가운데서의 삶은 낚시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한가한 어부의 모습이다.

그러한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간 밤의 눈 갠 후의 경물이 달랏고야 앞희는 만경유리 뒤희는 천첩옥산 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이 아니로다.”라는 부분이다.

이 밖에 눈을 노래한 시조로는 신흠(申欽)의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 시비(柴扉)를 여지마라 날 ᄎᆞ즈리 뉘 이스리 밤듕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긔 벗인가 ᄒᆞ노라.”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눈을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그 단절감을 달에 옮겨서 위안 받고자 하는 태도가 특이하다. 그러나 눈이 단절감만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대비로서도 중요한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안민영(安玟英)의 “건곤이 눈이여늘 네 홀노 푸엿구나 빙자옥질(氷資玉質)이여 합리(閤裏)예 숨어잇셔 황혼에 암향(暗香) 동(動) ᄒᆞ니 달이조차 오더라.”라는 시조에서의 눈은 매화를 더욱 기품 있게 드러내는 대조미로 쓰였다. 또한 “이 몸이 주거가서 무어시 될고 ᄒᆞ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야이셔 백설이 만건곤(滿乾坤)ᄒᆞᆯ 졔 독야청청(獨也靑靑) ᄒᆞ리라.”에서는 소나무의 절개를 드러내기 위해 눈이 의도적인 소재로 동원되고 있다.

따라서, 겨울을 나타내는 소재인 매화나 소나무는 눈이나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과 어울려서 하나의 전형적인 겨울 이미지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울은 각각의 독립적인 사물들로 존재하기보다는 여러 사물과의 상대적인 대비 관계에서 더욱 그 효과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가령, 달을 그리고자 한다 해도, “벽천(碧天) 홍안성(鴻雁聲)에 창을 여고 ᄂᆡ다 보니 설월(雪月)이 만정(滿庭)ᄒᆞ여 님 곳 비치러니 아마도 심중안전수(心中眼前愁)는 나ᄲᅮᆫ인가 ᄒᆞ노라.”와 같이 눈과 기러기가 한데 어울려 겨울의 풍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조선조의 가사에서도 겨울을 노래한 것은 시조와 비슷하다. 가령,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星山別曲>에서는 “공산(空山)의 싸힌 닙흘 삭풍(朔風)이 거두 부러 데구름 거ᄂᆞ리고 눈조차 모라 오니 천공(天公)이 호ᄉᆞ로와 옥으로 고ᄌᆞᆯ 지어 만수천림(萬樹千林)을 ᄭᅮ며곰 낼셰이고 앏여흘 ᄀᆞ리 어러 독목교(獨木橋)빗겻ᄂᆞᆫ디 막대 맨 늘근 쥬ᇰ이 어ᄂᆡ 뎔로 간닷말고……”에서 보듯이 눈이 쌓인 경치를 신선의 세계로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설경의 묘사는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俛仰亭歌>에서도 “초목(草木) 다 진 후의 강산이 ᄆᆡ몰커늘 조물(造物)리 헌ᄉᆞᄒᆞ야 빙설(氷雪)노 ᄭᅮ며내니 경궁요대(瓊宮瑤臺)와 옥해은산(玉海銀山)이 안저(眼低)에 버러셰라……”라고 해서 인간세상을 떠난 딴 세계로 된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겨울을 폐색(閉塞)의 계절로 그려서 단절의 계절로 형상화한 것도 있다. “건곤(乾坤)이 폐색ᄒᆞ야 백설이 ᄒᆞᆫ비친 제 사ᄅᆞᆷ은 ᄏᆞ니와 ᄂᆞᆯ새도 긋처 잇다……”라고 한 것은 단절감의 예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매화나 솔을 그려서 절개를 드러내면서 격조를 표현하려 한 것도 시조의 그것과 같다. 작자 미상의 <사시풍경가 四時風景歌>에서 “56일 설상(雪霜) 우에 매화향기 아담(雅談)하다 창창 송ᄇᆡᆨ은 납설(臘雪)을 띠어 있고 의의(倚倚) 취죽(翠竹)은 풍상을 업수여겨 열사의 후신인가 절개도 견고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그 예가 된다.

겨울을 추위의 계절로 인식한 표현이 ‘엄동설한’이라면 이러한 인식이 가사에 표출되는 것은 비교적 후기의 일이 된다. 그 만큼 가사는 실제의 생활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시 작품으로서 겨울을 노래한 것은 봄과 가을을 노래한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 그리고 그 표현 경향도 시조나 가사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 고경명(高敬命)의 <어주도 漁舟圖>에는 “갈숲에 눈보라 몰아치는데 술 싣고 돌아와 배를 매누나 빗겨가는 젓대소리 달은 하얗게 잘새는 내낀 곳을 날아가는구나(蘆洲風颭雪滿空 沽酒歸來繫短篷 橫笛數聲江月白 宿禽飛起渚煙中).”라고 했는데 전형적인 겨울의 서경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성중(李誠中)의 <무제 無題>라는 시는 “눈 속에 맑은 달빛 사창에 드니 찬 등불 가물가물 희미하구나 술 있어 은근히 기다리는데 그대는 오지 않고 밤만 깊어라(紗窓近雪月 滅燭延淸暉珍中一杯酒 夜闌人未歸).”라고 함으로써 눈과 긴 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김춘택(金春澤)은 <김덕수내방장귀추고부 金德受來訪將歸推古賦>라는 제목의 시에서 “저녁이자 찬바람에 눈보라 되우치니 으슥한 골목 마을사람 자취 끊였구나 여윈 말 굽을 털며 구슬프게 울어대고 언새 깃 움치고 앉은 채로 못 나네(夕風吹雪急 窮巷見人稀 病馬鳴如訴 寒禽倦不悲).”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겨울 저녁, 길을 떠나는 상황에서의 적막하고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개인적 정서의 성격을 전형적인 형상화의 방식에 맞추어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전형성을 벗어나서 삶의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홍서봉(洪瑞鳳)의 <유감 有感>을 들 수 있다.

“가난한 여인 울며 베를 짜나니 눈보라 몰아치는 밤을 꼬박 새우네 내일 아침 세금으로 이 베를 주면 한 사람이 간 뒤에 또 한 사람 오리니(寒女鳴機瀉淚頻 撲天風雪夜來新 明朝截與催租吏 一吏纔歸一吏嗔).”라는 시는 세금에 시달리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 겨울의 황량함과 어울려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변화, 즉 겨울을 관념적이며 서경적 관습으로 노래하는 데서 벗어나 삶의 시로 노래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의 실학파나 위항 시인들에게 비로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 문학에서도 겨울을 형상화하는 소재는 여전히 눈이나 바람같은 것이며, 단절이나 폐칩의 계절로 그려지는 것은 고전 문학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변화한 것도 많은데, 가령 매화나 송죽을 노래한 것이 줄어든 것도 그 예이다. 또, 겨울의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양해진 것도 들 수 있다.

“어느 먼 곳의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끝 호롱볼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양 흰 눈이 내려……”라고 노래한 김광균(金光均)의 <설야 雪夜>같은 시도 눈이 신비의 이미지나 정감을 자극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고전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이육사(李陸史)의 <절정 絶頂>이라는 시는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을 휩쓸려 오다……”라고 노래함으로써 북풍이 단순한 바람에 머무르지 않고 괴로운 현실의 고난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소설에서도 겨울의 묘사는 대동소이해서 음침하고 황량한 계절이라고 보고 배경을 설정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 예로 심훈(沈熏)의 <영원한 미소>같은 소설에서는 “서울의 겨울밤은 깊었다. 달도 별도 없는 음침한 하늘 밑에서 갈갈이 찢어진 거리에는 전신줄에 목을 매어 다는 밤바람의 비명이 들릴 뿐 더구나 북촌 일대는 기와집 초가집 할 것 없이 새하얀 눈에 덮여 땅바닥에 납작히 얼어붙은 듯하다.”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눈도 바라보기에 따라서는 신비도 되고 황량한 이미지도 됨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화가 현대에 와서 보이는 특징이다.

겨울을 그린 그림의 주된 소재는 낚시를 하는 사람의 외로운 모습과 텅빈 나무숲과 같은 것들이었다. 앙상한 나무들의 산을 배치하고 외로운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겨울이 주는 고독이나 단절감을 형상화했다. 또는, 겨울날 길을 가는 일행들을 그리기도 했는데 대체로 어두운 색조가 분위기로 배치되기도 한다.

조선 초기의 안견(安堅)이 그린 <강천모설 江天暮雪>이나 김황(金榥)의 <설경산수도 雪景山水圖> 또는 이정근(李正根)의 <설경산수>, 그리고 회은(淮隱)의 <한강독조도 寒江獨釣圖> 또는 심사정(沈師正)의 <설경산수>등은 널리 알려진 겨울그림 들이다.

그리고 겨울날의 나들이를 그린 것으로는 이인문(李寅文)의 <설경산수 雪景山水>와 이형록(李亨祿)의 <설중향시도 雪中向市圖>가 있는데, 특히 이인문의 그림은 암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길을 가는 사람들의 웅크린 모습이 나귀와 함께 암울해 보이는 느낌을 잘 전해준다.

이 밖에도 겨울을 그린 세한도(歲寒圖) 가운데 유명한 그림들이 더러 있는데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는 특히 유명하다. 그리고 겨울날 나무를 해서 지고 오는 그림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김홍도(金弘道)의 <부신초동 負薪樵童>이라든가 김두량(金斗樑)의 <사계산수 四季山水> 가운데서 겨울 부분에 이런 모습이 나온다.

현대에 와서는 겨울을 나타내는 것이 화풍의 변화와 서양화의 유입으로 다양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이고 관념적이기까지 했던 소재들에서 탈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설경이 겨울을 나타내는 주된 소재라는 전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음악 작품에서 겨울을 노래한 것이 많지 않은 이유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풍류나 화류에 부적당한 데서 온 영향으로 생각된다. 굳이 예를 찾는다면 민요 <한오백년> 가운데서 “나리는 눈이 산천을 뒤덮듯 정든 임 사랑으로 이 몸을 덮으소.”라고 표현한 것처럼 삽입된 노랫말 정도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 음악이 들어왔지만 겨울을 노래한 것은 그리 흔치 않다.

음악에서 겨울을 노래한 것이 흔치 않은 이유는 계절 자체의 성격과 음악의 연행(演行)방식에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즉,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눈[雪]을 제하고는 황량하고 처참해서 미화시켜 노래할 대상이 되기에 부적당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주로 농사일과 연관시켜 음악 활동을 했던 민속악의 경우 추운 계절에는 공연의 조건이 상대적으로 나빠, 계절을 예찬하는 기회나 발상이 줄어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실내악으로 즐길 수 있었던 가곡·가사·시조에서는 겨울밤의 고독이나 설경 등을 노래한 것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에 비해 민속악에서 겨울의 정서를 노래한 것이 적다는 비교는 바로 이런 연행상의 차이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인은 겨울을 일체의 활동이 끝난 계절로 생각을 했다. 농사일이 주된 생활이던 사회에서 겨울은 농한기로 인식이 되었으며 겨울철의 마땅한 여가 선용의 방법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편안함과 포만감도 없지 않아서 “등 따습고 배 따뜻하니 걱정이 없다.”는 말로 쉬는 즐거움과 일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있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겨울은 한 해의 마무리요 새로운 봄을 맞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생각을 했다. 봄은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는 때이기에 새로운 봄, 즉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한 해 동안에 밀린 일이나 관계를 청산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섣달 그믐까지는 빚을 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그런 예이다.

겨울은 ‘끝남’이며 삶의 끝은 ‘죽음’이기에 겨울과 죽음을 동일시하였으나 다시 찾아오는 봄이 있다는 점에서 봄을 기다리는 시련의 기간으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이 혹독하면 다음에 오는 기쁨도 크다는 생각을 가졌다. “겨울이 추워야 이듬해 병이 적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었다. 또, 계절 내에서의 순환적 교체도 날카롭게 파악해서 ‘삼한사온’같은 것을 기후 현상이면서 음지가 양지되는 것을 실증하는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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