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경섬(慶暹)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시대 장례원행판결사, 부제학,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경섬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해사록 / 경섬
이칭
퇴부(退夫), 삼휴자(三休子), 석촌(石村), 칠송(七松)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인물
성격
문신
성별
출생일
1562년(명종 17)
사망일
1620년(광해군 12)
본관
청주
경력
호조참판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장례원행판결사, 부제학,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퇴부(退夫), 호는 삼휴자(三休子)·석촌(石村)·칠송(七松). 경세청(慶世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혼(慶渾)이고, 아버지는 경시성(慶時成)이며, 어머니는 박난영(朴蘭榮)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94년 홍문관정자를 제수받았고, 1598년 진주사(陳奏使)의 정사(正使)인 최천건(崔天健)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사헌부의 지평·장령과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01년 남원부사가 되었다.
1607년 홍문관교리로서 통신사 여우길(呂祐吉)과 함께 통신부사가 되어 임진왜란 후 첫번째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국교를 다시 열게 하고 임진왜란 때의 포로 1,340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1618년(광해군 10) 호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장례원행판결사(掌隷院行判決事)가 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부제학과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정일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