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고려양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고려양(高麗樣)

    고려시대사개념용어

     고려후기 원나라에서 유행하였던 고려의 풍습.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고려양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분야
    고려시대사
    유형
    개념용어
    시대
    고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후기 원나라에서 유행하였던 고려의 풍습.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대몽항쟁이 끝난 뒤 고려와 원나라는 인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여 몽고의 풍습이 고려에도 전래되었지만, 고려의 풍습도 원나라에 전파되었다.
    즉, 원나라 왕실과 귀족들은 후궁·궁녀·시첩·시비에 충당하기 위하여 고려의 처녀를 자주 요구하였고, 군사들도 집단적으로 혼인하기 위하여 고려 처녀들을 많이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에서는 결혼도감·과부처녀추고도감 등을 설치하고 국내의 많은 처녀와 과부들을 원나라에 보냈는데, 이들이 원나라에 들어가 왕실 및 일반 사회에 고려의 풍습을 전파하게 된 것이다.
    고려의 풍습 가운데, 특히 의복·신발·모자 등의 복식과 만두·떡 등의 음식, 아청(鴉靑)주 01) 등의 기물은 급속도로 전파되었는데 이를 총칭하여 고려양이라 하였다. 그 유풍이 오늘날까지 남아 지금도 몽고족 사회에서는 고려만두(高麗饅頭)·고려병(高麗餠)·고려아청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경신외사(庚申外史)

    • 「고려(高麗)의 원(元)에 대(對)한 공녀(貢女)」(유홍렬,『진단학보(震檀學報)』18,1957)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검은색을 띤 푸른빛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재명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