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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등호제(九等戶制)

고려시대사제도

 신라·고려시대 호(戶)를 빈부(貧富) 또는 인정(人丁)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아홉 등급으로 구분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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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고려시대 호(戶)를 빈부(貧富) 또는 인정(人丁)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아홉 등급으로 구분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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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호(戶)는 가(家)와 같은 뜻으로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집을 말하며, 호주가 한집안 식구를 관부(官府)에 등록한 것을 호적이라 한다. 호는 율령정치에 있어서 행정상·사회조직상 단위구실을 하고 있다.
호의 구분법은 중국 주나라 때부터 시행된 것으로 『주례(周禮)』에 “호를 급전(給田)된 땅의 지력(地力)에 의해 상지·중지·하지의 3등급으로 나눈다.”라고 한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진(秦)·한(漢)·위(魏)나라에서도 빈부를 기준으로 상·중·하 호(上中下戶)의 3등급으로 나누는 삼등호제를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돈황문서(敦煌文書) 가운데 『위문서(魏文書)』의 내용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그 뒤 인구의 증가와 세공(歲貢)의 공평한 부과를 위해 북제(北齊)의 문선제(文宣帝) 때 삼등호제를 다시 각각 상·중·하로 나누어 상상호·상중호·상하호·중상호·중중호·중하호·하상호·하중호·하하호의 구등호제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수(隋)나라와 당나라 초기까지는 삼등호제를 실시하다가 태종 때에 비로소 구등호제가 법제화되어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구려의 소수림왕 때(372)와 신라의 법흥왕 때(520)에 율령을 반포했지만 구등호제를 포함한 율령격식의 완비는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라고 생각된다. 이는 당나라의 구등호제 채택 시기로 보아 통일 후에 당나라의 율령격식을 직수입하면서 채택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도다이사(東大寺)쇼소인(正倉院)에서 발견된 「신라민정문서」에 의하면, 신라에서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호(戶)’의 단위를 ‘연(烟)’이라 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중하연(仲下烟)·하상연(下上烟)·하중연(下仲烟)·하하연(下下烟)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어 신라의 구등호제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고려에서도 구등호제는 그대로 이어져 『고려사』 형법지 호혼조(戶婚條)에는 “호의 편성은 인정(人丁)의 다과에 따라 하며 9등급으로 나누어 역(役)을 정한다.”라고 하였다. 즉, 호의 편성과 등급을 호의 빈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인정의 다과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조선에서는 1392년(태조 1)에 조준(趙浚) 등의 건의로 대·중·소로 구분된 삼등호제가 받아들여졌고, 1435년(세종 17)에는 대·중·소·잔(殘)·잔잔으로 구분된 오등호제가 실시됨에 따라 신라와 고려에 걸쳐 실시되었던 구등호제는 소멸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전봉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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