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사회경제적 특징을 반영하는 대표적 용어 가운데 하나인 족정(足丁)과 반정(半丁)은 그 특징만큼 설명도 다양하다. 족정과 반정은 고려 특유의 직역제도와 토지제도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용어로서, 크게 인정설(人丁說)과 토지설(土地說)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려의 직역 가운데 하나인 군역은 국가 유지에 필수적인 직역이며, 향리역과 기인역 역시 그에 상응하는 중요한 직역이다. 족정과 반정은 이들 직역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다.
고려 토지제도의 근간인 전시과(田柴科) 제도는 관료와 군인층에게 그 직역에 상응하는 토지를 지급하는 제도로서 전정연립(田丁連立)이라고 하여 직역이 세습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었다. 전정연립제는 관료에서부터 군인 · 기인(其人) · 향리(鄕吏)에 이르기까지 직역 계승을 전제로 그에 상응한 토지에 대한 지배 권리를 계승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리의 실체에 대한 설명 또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먼저 족정과 반정이 인정이라는 설과 관련하여 다음 사료가 주목된다. 『고려사』 권29, 선거지(選擧志)3, 전주(銓注)조, 기인에 보면 1077년(문종 31)에 판(判)하기를, “무릇 기인은, 1,000 정(丁) 이상의 주(州)이면 족정으로서 나이 40세 이하 30세 이상인 사람을 선발하여 올려 보내도록[선상(選上)] 허락하고, 1,000정 이하의 주는 반정 · 족정을 논하지 말고 병정(兵正) · 창정(倉正) 이하 부병정(副兵正) · 부창정(副倉正) 이상의 부강(富强)하고 정직한 사람을 뽑아 올려 보내도록 하라. 족정은 15년을 기한으로, 반정은 10년을 기한으로 역(役)을 서며, 반정은 7년, 족정은 10년에 이르면 동정직(同正職)을 허락하고, 역의 기한이 끝나면 직(職)을 더해주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사료 내용에 따르면 기인을 선발하여 중앙으로 올려 보내기 위하여 각 지역의 규모에 따라 기인 선발의 원칙을 정한 제도이다. 여기에서 "1,000정 이상 주(千丁以上州)"에 보이는 ‘정(丁)’의 의미는 족정과 반정의 용어와 관련해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이란 역역을 부담할 수 있는 연령층으로서 대체로 ‘16~59세 남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1,000정 이상의 주'에서는 족정으로, 나이가 30∽40세인 자를 뽑아 올리고 그 이하의 주에서는 일정한 향리직을 가지고 있는 부강하고 정직한 자를 뽑아 올리라고 한 사료의 내용에서 족정과 반정은 일단 인정을 가리키는 용어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정설을 주장한 학자는 백남운을 비롯하여 한우근, 유정지덕(有井智德)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사』 권79, 식화지2, 호구(戶口)조에 의하면 “나라의 제도에 나이 16이면 정이라 하고 비로소 국역을 진다. 60이면 노(老)라고 하고 역을 면제한다. 주군(州郡)은 매년 인구수를 헤아려서 호적에 올리고 호부에 보고한다. 무릇 징병(徵兵)과 조역(調役)은 호적에 따라 정한다〔이호적초정(以戶籍抄定)〕.”고 하였다.
이에 따라 백남운은 백성의 나이 16~59세에 국역을 부담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인정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부병의 경우에는 20∽59세의 남자가 정이 된다고 보고 전정(田丁)을 군전(軍田)의 직접 경작자로서 양호(養戶)로 파악하였고, 전정은 군정(軍丁)을 대신해서 토지를 경작하는 자로 보았으며, 전정과 군정은 연대적으로 군역에 복무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족정은 장정(壯丁)으로, 반정은 20세 미만의 반장정(半壯丁)으로 보고 있다(백남운).
한우근은 제도적으로 1659세의 역을 질 수 있는 자를 ‘정’이라고 하고 족정과 반정은 진(晉)나라의 전정(全丁), 반정(半丁)과 같이 역의 의무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2059세의 남자를 족정이라고 보면서 반정은 16~19세의 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족정에게 주는 일정 면적의 토지도 족정으로 불렸을 것이라고 보았다. 유정지덕은 고려의 토지제도는 환수의 규정이 존재하는 지역적 균전제로 파악하고, 전정은 급전의 단위이면서 연령을 표시하는 이중적 용어로 보았다. 국역을 지는 자는 모두 ‘정’이며, 정은 족정과 반정으로 나뉘고, 족정은 2059세의 남자, 반정은 1619세의 남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1960년대 후반 일제의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일제 식민사학에서 제기하였던 토지국유론을 비판하고 토지사유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대한 연구에서도 토지국유론의 일환으로 나타났던 균전제론(均田制論)을 비판하면서 토지사유론에 입각한 다양한 연구들이 등장하였다. 족정 · 반정과 관련하여 전정의 의미도 토지를 가리키는 용어라는 사실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연구자 간의 다양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었다.
하타다 다카시〔旗田巍〕는 전정을 토지로 파악하고 전정은 정호(丁戶)가 직역의 댓가로 받은 토지이며, 정호와 백정의 구분이 직역의 유무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하타다의 논리를 계승하여 강진철은 고려의 군제를 부병제(府兵制)로 보면서 3가 1호의 원칙에 입각한 군호(軍戶)에게 지급된 일정 면적의 토지를 족정으로 보았다.
다케다 유키오〔武田幸男〕는 하타다의 견해를 진전시켜 전정은 전시과 지급 토지로서 영업전(永業田)이라고도 불렸고, 일정 면적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시과 지급 토지 자체라고 파악하였다. 또한 전정의 피급 대상이 군인 · 기인 · 향리에 한정하지 않고 양반 · 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고 있다고 보았다.
민현구는 전시과의 토지를 직전 계열과 전정 계열로 나누고 전정은 직역의 세습과 관련된 토지로 보았다. 역제(役制)와 전제(田制)가 결합된 토지제도는 고려 후기로 가면서 역과 분리되면서 전정 계열의 토지는 구분전화(口分田化)되었다고 보았다. 특히 족정과 반정은 17결 · 8결로 구획된 전세 납부 단위로 파악하였다(「고려의 녹과전」).
김용섭은 양전제와 관련하여 전정은 일정 면적의 토지로서 수세의 단위가 되는 토지로 보았다. 일정 구획의 결수를 충족하는 토지를 족정, 미달되는 토지를 반정이라고 보고, 17결을 1족정이라고 하면 반정은 족정의 반 정도라고 하였다. 조세의 징수는 족정 · 반정 단위로 이루어졌으며, 토지의 분급도 족정 · 반정 단위로 조정하여 지급하였다고 보았다(「고려시기의 양전제」).
이성무는 전정을 토지와 인정이 결합되어 있는 수취 단위로 보고, 사유지인 민전 위에 전정이라는 수취 단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족정은 전정의 구성원인 3정 가운데 1인의 정군(丁軍)을 내는 대신 토지 17결을 지급하고 조를 면제하였다고 파악하였다(「고려 · 조선 초기 토지소유권에 대한 제설의 검토」).
윤한택은 족정이란 17결로 구성된 양전 단위이자 수취 단위로서 전세 수취, 직역지 분급, 직역 차정의 자격 요건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족정호(足丁戶)란 17결과 6정이 결합된 편호(編戶)로서 지표 농가로 상정하고 있다. 지표 농가란 개별 자연농 간의 불균등한 인정과 전정을 일정한 등급으로 정리하고 환산하여 만들어 낸 인위적인 편호 농가가 되는 셈이다.
김기섭은 고려시대의 ‘정’은 인정과 토지가 결합된 농업 경영 단위로서의 자연호(自然戶)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족정과 반정은 원래 족정호와 반정호로서 정호층 내의 농업경영규모의 차이를 반영한 용어이다. 국가는 이들 족정호와 반정호에 대해 군역, 기인역, 향리역 등 직역을 부과하여 이에 대한 면조권을 부여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박경안은 전정이란 양전 과정에서 일정 단위로 편성된 토지로서, 그 속에는 계층 분화를 반영한 다양한 민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를 족정과 반정으로 묶어 수조권 분급 단위 및 수세 단위로 활용하였다고 보았다(「고려시기 전정연립의 구조와 존재양태」).
이경식은 전시과는 농민의 소유 토지 위에 수조권을 분급한 토지제도로 보고, 고려 전기부터 양전을 통해 일정 면적의 토지를 ‘정’으로 편성한 ‘작정제(作丁制)’가 시행되어 수세 단위, 직역 차정의 단위로서 기능하였다고 보았다(「고려시기의 작정제와 조업전」). 그리고 조포역(租布役)의 부세 전체를 하나의 부담 단위로 하는 그러한 규모의 전결을 정으로 구획하여 토지 분급, 전조 수취, 세역의 배정 등에 응용할 단위물의 설정이 필요하였고, 그것이 바로 족정과 반정이라고 보았다(「고려시기의 세역운영과 족 · 반정」).
고려 전기의 족정과 반정은 군인〔주현군(州縣軍)의 보승(保勝) · 정용(精勇)군〕, 기인, 향리 등 직역자에게 분급한 토지로서, 이들 토지의 작정(作丁) 단위로서 토지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각 직역자의 사유지에 대해 1/10의 면조권을 준 것으로 파악한 견해도 있다(오일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