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은 고려시대 군역(軍役)·기인역(其人役)·역역(驛役) 등의 특정한 직역(職役)을 부담하지 않고 주로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층이다. 중국의 남북조와 수(隋)나라에서 평민, 즉 백성을 일컫던 말이다. 민정(民丁) 중에서 군역의 의무를 지고 있던 정호(丁戶)와는 달리 농업에 종사하지만 군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는 신분층을 가리킨다. 군역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직역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소유한 토지에 면세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일반 잡역(雜役)은 부담하였기 때문에 국·공유지의 경작·축성·축제·궁궐축조 등에 동원되는 가장 광범위한 계층이었다.
백정이라는 명칭은 원래 중국의 남북조와 수(隋)나라에서는 무관자인 평민, 즉 백성을 일컫던 말이다. 백정의 ‘백(白)’은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고, ‘정(丁)’은 ‘정호(丁戶)’ 또는 ‘정인(丁人)’이라는 뜻이므로 백정은 정호(정인)가 아닌 사람을 지칭한다.
고려시대의 정호는 16세에서 59세까지의 민정(民丁) 중에서 군역의 의무를 지고 있던 사람을 말하였다. 이때의 군역은 양반층이 관직에 종사하는 권리 및 의무로서의 출사(出仕), 지방 향리들이 부담해야 할 의무로서의 기인역, 역민(驛民)들의 의무였던 역역 등과 같은 성격의 직역이다. 따라서 정호는 고려시대에 직역을 감당해야 할 신분 중에서 군역에 종사하는 일반 농민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호가 아닌 백정은, 곧 농업에 종사하지만 군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는 신분층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고려시대의 정호는 그들이 부담하고 있는 직역으로서의 군역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국가로부터 군인전(軍人田) 또는 족정(足丁) · 반정(半丁)으로 일컬어지는 명전(名田)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백정은 직역으로서의 군역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직역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어떠한 명전도 지급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명전의 지급이라는 것이 실제적인 토지 지급이라기보다는 원래 소유하고 있던 토지에 대한 조세를 면제해주는 것을 의미했다는 견지에서 볼 때, 백정이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들 소유토지에 대해 면세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뜻에 불과하지, 백정이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즉, 고려시대의 백정은 자기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들이 소유했던 토지는 대개 조상으로부터 전래받은 토지(보통 조업전으로 불리었다)이거나 개간을 통해 확보한 토지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백정들은 대개 양반전(兩班田) · 군인전 · 사원전(寺院田) 등의 사유지나 국 · 공유지 등의 각종 토지를 빌려 전호경작(佃戶耕作)하였다. 즉, 그들의 일부는 자작농으로, 일부는 전호로서 존재하였다.
한편 고려시대의 백정은 국가 유사시에 한인(閑人) · 학생 등과 함께 자주 군역에 동원되었는데, 이 경우 국가는 그들에게 전정(田丁)을 지급하였다. 고려 말에 제기되었던 백정대전(白丁代田)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비록 직역으로서의 군역의 부담은 지지 않았으나 일반 잡역(雜役)의 부담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국 · 공유지의 경작 · 축성 · 축제 · 궁궐축조 등에 동원되었다. 이렇게 볼 때 고려시대의 백정은 수적인 면에서 가장 광범위한 계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