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예빈시주부, 경양찰방 등을 역임한 서얼 문사.
이칭
사원(士源)
춘주(春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9년(숙종 25)
사망 연도
1733년(영조 9)
본관
청풍(淸風)
주요 저서
춘주유고(春洲遺稿)
주요 관직
예빈시주부|경양찰방
내용 요약

김도수는 조선 후기 예빈시주부, 경양찰방 등을 역임한 서얼 문사이다.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서손(庶孫)으로 20대 초반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거쳐 경양찰방(景陽察訪)·지례현감(知禮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어릴 적부터 시문에 재능을 보여 노론 명문가의 문사 및 중인과 서얼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예빈시주부, 경양찰방 등을 역임한 서얼 문사.
가계 및 인적 사항

김도수의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원(士源), 호는 춘주(春洲)이다.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서손(庶孫)으로 아버지는 김석순(金錫順)이다.

주요 활동

김도수는 청풍김씨 가문의 명망에 힘입어 20대 초반 주1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1721년(경종 1) 주2), 1722년 주3에 제수되었다. 1725년(영조 1) 27세의 나이로 주4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이후 예빈시주부를 거쳐 1727년 경양찰방, 1731년 지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관직 이후에는 춘천에 은거하였으며,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김도수는 13세부터 시를 배우기 시작하는 등 시문에 재능을 보였다. 김창흡(金昌翕)을 스승으로 모셨고, 이하곤(李夏坤)과 송상기(宋相琦) 등 노론 명문가의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또한 홍세태(洪世泰), 정래교(鄭來橋) 등의 중인뿐만 아니라, 이매(李梅) · 홍서기(洪敘箕) 등 주5 문사들과 친하게 지내며 신분과 당색을 초월해 폭넓은 교유관계를 유지하였다.

학문과 저술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춘주유고(春洲遺稿)』가 전하는데, 권 1에 수록된 시가 모두 198편이다. 독서를 위해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생활하던 초년에 지은 시부터 1723년 금강산, 1727년 지리산, 가야산, 속리산, 화양동 일대를 유람할 때 지은 시들이 많다. 그 외에 북한산과 춘천에서 지낼 때 지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은 서얼과 외척이라는 현실 속에서 고민하였던 김도수의 시대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성상원년을사증광별시사마방목(聖上元年乙巳增廣別試司馬榜目)』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실록(英祖實錄)』
『춘주유고(春洲遺稿)』

논문

김근태, 「春洲 金道洙의 春川 幽居와 시세계」(『한문고전연구』 22, 한국한문고전학회, 2011)
김경숙, 「김도수 한시 연구: 외척과 서얼의 이중적 자아」(『한국한문학연구』 28, 한국한문학회, 2001)
주석
주1

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임시로 통례원에 속하여 대소 조회의 의전을 맡아보던 종구품 벼슬.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통례원(通禮院)에 속하여 조회나 제사 따위의 의식을 행할 때 식순(式順)을 읽는 일을 맡아보던 종구품 벼슬.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인의(引儀)로 승진하였다.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임시 과거 시험. 태종 1년(1401)에 처음 실시하였으며 생진과의 초시와 복시, 문과의 초시ㆍ복시ㆍ전시 5단계로 나누었다.    우리말샘

주5

서자 얼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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