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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金泉市)

인문지리행정지명

 경상북도 서부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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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북도 서부에 위치한 시.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구미시와 칠곡군, 서쪽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남쪽은 성주군과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은 상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52′∼128°18′, 북위 35°49′∼36°15′에 위치한다. 면적은 1,009.50㎢이고, 인구는 14만 13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4개 면, 7개 행정동(19개 법정동), 275개 행정리(151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시의 동북부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추풍령(秋風嶺, 1,111m)·삼도봉(三道峰,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눌의산(743m)·황악산(1,111m)·천덕산(986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삼도봉은 충청북도·전라북도·경상북도의 경계가 되고 있다. 남쪽에는 대덕산에서 갈라져 나온 가야산맥이 뻗어 있고, 수도산(修道山, 1,317m)·단지봉(丹芝峰, 1,327m)·국사봉(875m) 등이 주봉을 이루며 경상남도와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쪽에는 도립공원인 금오산(金烏山, 977m)이 솟아 있어 구미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영암산(782m)은 김천시·칠곡군·성주군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남쪽에는 백마산(716m)·압속산(870m) 등이 솟아 성주군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또한 추풍령·면목령(面目嶺)·주치령(走峙嶺)·우두령(牛頭嶺) 등의 고개는 높은 산지를 가로지르며 인접지역으로 통하는 주요 육로가 되고 있다. 소백산맥 동사면에 발달한 화강암지역이 풍화되어 이루어진 분지 중앙에는 도심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도심 주변을 서쪽의 고성산(高城山, 483m), 북쪽의 묘함산(卯含山, 733m)·문암봉(門巖峰, 577m), 남쪽의 백마산(白馬山, 716m)·효자봉(孝子峰, 512m) 등의 변성암으로 구성된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도심지의 지형은 화강암질의 낮은 구릉지와 감천·직지천이 이루어 놓은 충적평야인 금릉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直指川)과 대덕산·우두령에서 발원한 감천(甘川)이 주요 하천이다. 감천은 남서부에서 동북부로 시의 중앙을 관류하며, 직지천·아천(牙川)·율곡천(栗谷川)·부항천(釜項川) 등과 합류, 구미시로 빠져나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감천과 직지천이 이루어 놓은 금릉평야와 개령평야는 들이 넓고 기름져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고, 이 지방 농업을 위주로 하는 1차 산업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 조선 말기까지는 낙동강 하구에서 소금배가 올라올 정도로 깊었던 감천하류가 무절제한 야산개발로 하상이 높아져 홍수의 주원인이 되어 왔는데, 근래에는 야산조림에 힘쓰고 있다.
기후는 소백산맥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이 차고 건조한 바람으로 넘어 올라오며, 여름에는 남동풍이 복사열을 받아 더운 바람이 되어 불어오므로 몹시 덥다. 연평균기온 14.8℃, 1월 평균기온 0.8℃, 8월 평균기온 25.8℃로 비교적 연교차가 크다. 연강수량은 1,222.4㎜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김천시 일대의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성면 송국리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감문면 송북리, 구성면 상거리 등지에서 고인돌과 마제석촉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견됨으로써 늦어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문화단계에서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음을 알려 준다.
이 지역에서는 삼한시대 무렵 소국(小國) 단계로 진입했는데, 감문국(甘文國)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감문국은 231년(조분이사금 2)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557년(진흥왕 18) 감문주(甘文州)를 두어 상주(上州)의 치소가 되었다. 이 일대는 신라·백제의 접경지역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는데, 이 주치(州治)의 설치는 백제와의 전쟁에 대비한 군사적 필요성에 따른 조처였다.
614년(진평왕 36) 상주의 주치가 일선주(一善州)주 01)로 옮겨진 뒤, 군현체제가 성립되면서 금물현(今勿縣)주 02)·김산현(金山縣)주 03)·지품천현(知品川縣)주 04)·무산현(茂山縣)주 05) 등을 거느리게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시 감문군은 개령군(開寧郡), 금물현은 어모현(禦侮縣), 지품천현은 지례현(知禮縣), 무산현은 무풍현으로 각각 개명되었다. 이 지역은 선산과 더불어 신라 불교 전래의 한 통로로서, 일찍이 눌지왕대에 아도(阿道)가 직지사(直指寺)를 창건하였다.
후삼국 통일 이후 고려시대 때 이 지역은 영속관계에 변화가 일어나 개령군의 속현이던 무풍현이 진례현(進禮縣)의 속읍이 되었고, 김산(金山)·지례 두 현은 경산부(京山府)주 06)의 속읍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현종 때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당시에 다시 전면 조정되어 1018년(현종 9) 개령군과 어모현이 상주목에 내속되었다.
이러한 영속관계의 변화는 이 지역의 정치적·군사적 비중이 크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하지만, 교통 중심지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김산현에 김천역(金泉驛)이 설치되었다. 1172년(명종 2) 개령군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1390년(공양왕 2) 지례현과 김산현에도 감무가 파견되면서 다시 행정단위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김산현 관내에 정종(定宗)의 태가 묻혔다 해 김산군으로 승격되면서 어모현을 통합하였다. 1413년(태종 13) 개령군은 개령현으로 강등되어 현감이 파견되고, 지례현에도 현감이 파견되었다.
조선 초기 농업의 발달과정에서 이 지역 역시 토지가 비옥해 농업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여러 개의 제언(堤堰)이 축조되는 등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풍도 성행해 김산·개령·지례 등의 향교가 세워졌으며, 사림파 등장 이후 경렴서원(景濂書院)·경양서원(鏡陽書院) 등의 원사가 건립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정경세(鄭經世)·권경호(權景虎) 등이 의병을 모집하자 개령·김산 등지의 사족(士族)들도 대거 호응해 왜적을 무찔렀다.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가 전개되면서 봉건체제의 모순이 노출되고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1862년(철종 13) 김규진(金奎鎭) 등의 주도하에 개령민란이 일어나 민중의 반봉투쟁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혁에서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은 모두 군으로 되었고, 1905년 증산면이 성주군에서 지례군으로, 다음 해에 성주군 신곡면(薪谷面)과 황간군(黃澗郡) 남면이 김산군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령군·김산군·지례군이 김천군으로 통폐합되었고, 1931년 김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07년 이후 허위(許蔿)의 의병부대는 김천·지례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1919년 3·1운동 때 김천면에서는 3월 24일과 4월 5일에, 개령면에서는 3월 24일부터 4월 6일까지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유림들의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는 김천 출신 이석균(李鉐均)·이경균(李璟均) 등이 가담하였다. 그리고 1929년 김천소년회·청년회는 만주동포에 대한 탄압문제를 거론하면서 배일·배중국운동(排日排中國運動)을 추진하였다.
1949년 김천시의 승격으로 시군이 분리되어 김천군은 금릉군으로 개편되었다. 1950년 6·25전쟁 이후에는 지리산지역에 잔존해 있던 공비들의 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60년금릉군 부항면에 유촌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봉산면 복전동이 대항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에는 금릉군 농소면 덕곡동, 개령면 대광동, 어모면 응명동, 감천면 양천동이 김천시로 편입되었으며, 감문면 봉남동·소재동이 선산군 선산읍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이 새로운 김천시가 되었으며 3월 1일 아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김천시 13개동을 9개동으로 통폐합(1읍,14면,9동)하고 이후, 9개동을 8개동으로 통폐합(1읍,14면,8동)하였다. 2000년에 성내동과 남산동을 성남동으로 통합(1읍,14면,7동)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낙동강 지류인 감천의 상류에 위치하며, 감문국(甘文國)의 고지로 비정되는 곳으로 선사시대 이후의 유적·유물이 확인된다. 특히 구성면 송죽리에서는 선사시대 생활유적지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취락지·묘지가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감문면 송북리 성북골 마을에 선돌이 있고, 보광리·송북리 고인돌, 봉산면 예지리 고인돌, 구성면 상원리·송죽리 고인돌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감문면 보광리고분, 개령면 동부리·서부리고분군, 농소면 입석리고분군, 아포읍 대신리·봉산리고분군, 성내동고분이 있다. 성지(城址)로는 감문면 송북리의 속문산성, 지례면 구산성·교리산성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남면 오봉리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5호), 증산면 수도리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靑巖寺修道庵藥光殿石佛坐像, 보물 제296호)·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보물 제297호)·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가 있다. 또한 직지사에 많은 문화재가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직지사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직지사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5호)·직지사대웅전앞삼층석탑(보물 제606호)·직지사비로전앞삼층석탑(보물 제607호)·직지사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제670호)를 비롯해 금릉광덕동석조보살입상(보물 제679호)·금릉옥률리석조아미타여래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1호), 직지사청풍료앞삼층석탑(보물 제1186호), 직지사 문경김룡사동종(보물 제11·2호), 직지사 백지금니금강보문발원합부(보물 제1303호), 직지사 묘법연화경(보물 제1306호)이 있다.
그 외에도 금릉은기리마애반가보살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7호)·금릉덕천리석조관음보살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0호)·청암사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금릉서부동폐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금릉신안동석불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1호)·금릉태화리석조보살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9호)·청암사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청암사보광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8호) 등이 있다.
또 대항면 운수리에 한천사(寒天寺)출토금동자물쇠일괄(보물 제1141호)과 예념미타도장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보물 제1241호)이 있으며, 사지로는 쌍계사지·갈항사지가 있다.
고건축물로는 지례면 교천리에 지례향교대성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8호), 개령면 동부리에 개령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9호), 교동에 김산향교(金山鄕校,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7호)·봉황대(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구성면 상원리에 방초정(芳草亭, 보물 제2047호), 하원리에 모성정이 있다.
이 밖에 남산동의 김천과하천(金泉過夏泉,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8호), 성내동의 김천과하주(金泉過夏酒,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 황금동의 김천정장(金泉鉦匠,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남산동의 모필장(毛筆匠,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개령면 광천리의 금릉빗내농악(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이 전승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는 금릉대덕면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0호)와 금릉추량리 은행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91호)가 있다.
그 외에 상원리 명성재(明誠齋)에 소장된 가례증해판목(家禮增解板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 하원리 경덕사(景德祠)에 소장된 이숭원초상화(李崇元肖像畵,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김천신리 영천이씨 정려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7호), 성산여씨 하회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8호), 미륵암 석조미륵불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0호)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이 있었으며, 향교로는 김산향교(金山鄕校)·지례향교(知禮鄕校)·개령향교(開寧鄕校)가 있다. 교동에 있는 김산향교는 1392년에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중 소실되었다가 1634년(인조 12)에 중건하고 1871년(고종 12)에 중수하였다. 1426년(세종 8)에 창건한 지례면 교촌리의 지례향교는 임진왜란 중 소실되었으나 1690년(숙종 16)에 중수하였다. 1473년(성종 4)에 창건한 개령향교는 1522년(중종 17)에 수축하고 1563년(명종 18)에 중수했으며, 1837년(헌종 3)에 현 개령면 동부리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김산향교에 폐합되었다가 1946년에 복원하였다.
서원으로는 1648년(인조 26)에 설립한 성내동의 경렴서원(景濂書院)과 도동향사우, 1669년(현종 10)에 설립한 아포읍 대신리의 덕림서원(德林書院), 1756년(영조 32)에 설립한 춘천서원, 구성면 광명리의 경양서원, 1802년(순조 2)에 설립한 대덕면 조룡리의 섬계서원(剡溪書院)이 있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고, 섬계서원만 1961년에 복원되었다. 그리고 봉산면 예지리에는 봉암서당(鳳巖書堂)이 있다.
근대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7년에 김천공립보통학교가, 1909년에는 개령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2년 지례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진 후 20개의 학교가 개교했다. 중등학교는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가 사립학교로 개교했으나 일제에 의해 공립화되었다가 광복 후 사립으로 환원되었다. 1935년에는 김천여자고등보통학교(김천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가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1개교, 중학교 15개교, 고등학교 10개교, 김천대학교, 경북보건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도서관 2개, 박물관 1개, 공연시설 3개, 지역문화복지시설 3개, 기타시설 3개가 있다. 2000년 4월에 개관한 김천문화예술회관은 시립예술단을 창단하고, 다양한 공연 및 전시시설, 국제회의장 등을 갖추어 김천시의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1963년 용두동에서 개관한 김천시립도서관은 최종적으로 2003년에 평화동에 신축·개관하였으며 김천시민들에게 정보와 휴식을 제공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김천시는 환경공원과 강변공원 등 심하게 오염된 도심지 하천이나 하수종말처리장 등 시민들이 혐오하는 공간을 정비하고 환경친화적인 공원으로 조성하여 아름다운 휴식공간을 마련하였고, 뿐만 아니라 조각공원이나 직지문화공원 등 지역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마련하여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장려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김천시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농악과 줄다리기가 있다. 개령면 광천리 빗내마을에서 전래되어 온 농악은 전쟁에서 유래한 경상도 특유의 진(陣)굿농악으로 12가락의 굿판이 명확한 차이를 가지면서 마치(잔가락)의 종류도 다양하게 전개된다.
음력 1월 6일에 행해지며, 인원 제한 없이 노소를 불문하고 놀이에 가담하나 보통 한 가구당 한 명씩 참가해 놀이가 구성된다. 진행방식은 행진가락인 질굿을 치면 농악이 시작되어 상쇠의 입장을 알리는 문굿이 있은 다음, 원형을 그리며 정렬한다. 이어서 전 풍물꾼이 관중에게 인사를 하는 마당굿을 하고, 반죽굿·도드레기·영풍굿·허허굿·기러기굿·판굿·채굿·진굿을 거쳐 지신굿으로 놀이를 끝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행해지는데, 정초부터 집집마다 짚단을 얻어 가지고 지름 20㎝, 길이 100m 정도 되는 동아줄을 만들어 마을의 넓은 공터에서 한다. 이 때 농악이 선두에 서고 관을 쓴 사령이 대장옷을 입고 행렬을 지휘한다.
줄은 줄머리를 중심으로 양쪽 줄을 서로 연결시키는데, 앞줄(서쪽이나 북쪽 편의 줄)로 둥그런 모양의 도래를 만들고, 그 속에 숫줄을 넣어 꽂대(비녀목, 길이 2m, 지름 30㎝의 나무)에 질러 넣어 고정시킨다. 꽂대를 꽂으면 꽹과리를 울리고 줄을 당기기 시작한다. 이긴 편은 풍년이 들고 병이 나지 않으며 재앙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밖에도 지신밟기·연날리기·호미걸이를 비롯한 많은 민속놀이가 전해 온다.
남면과 개령면에서는 3월과 9월에 마을이나 시장에서 주최하는 별신제를 지낸다. 봄에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빌고, 가을에는 풍년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데, 3∼5일 동안 마을의 광장이나 시장에서 열린다.
동제 기간에는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집집마다 문전과 마을의 도로에 적토를 뿌린다. 제장에는 천막을 치고 제상을 설치한 뒤에 제문을 바치며, 헌작·분향·축문읽기·소지 등의 절차가 끝나면 제사에 참례한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여흥으로 3일간 무당의 춤과 농악·씨름 등이 벌어진다.
농소면 월곡리 밤실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 동제를 지낸다. 부정 타지 않은 사람을 제관으로 해 동짓날 새벽에 마을 뒷산에 있는 ‘찬물샘’에서 목욕하고 산에 올라 마을의 수호신에게 풍년과 안녕을 비는 제를 지낸다.
산정에서 먼저 첫 번째 제를, 마을 남쪽 페구나무 밑에서 두 번째 제를, 마을 북쪽 느티나무 밑에서 세 번째 제를 지냄으로써 동제가 끝난다. 제관으로 뽑힌 사람은 그 해의 부역을 면제시켜 준다. 그 밖에도 대덕면 연화리를 비롯해 여러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용추나 하늘이 가까운 산마루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효녀·열녀설화와 자연물과 관련된 전설이 이 고장에 전해 오는 주된 설화이다. 감천면에는 구걸한 쌀을 두고도 굶어죽은 효녀의 이야기인 「득옥(得玉)의 설화」가 전해온다. 조선 말기에 노비 득옥은 여든 살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느 해 큰 수해가 나 백성들이 풀뿌리로 연명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득옥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양식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양식을 주는 것은 노모를 모시기 때문인데 어머니 몫의 양식을 축낼 수 없다.’라고 해 자신은 풀뿌리만으로 버티었다. 그러다가 기진맥진해진 득옥은 어느 날 구걸한 쌀자루를 머리에 이려고 하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이 득옥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효행비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봉산면의 정승바위에는 떨어져 있는 남편을 만나고 싶어하던 정승부인에 관한 전설이 얽혀 있다. 이극돈(李克墩)이라고도 하고, 그의 형 이극배(李克培)라고도 하는 이 정승은 서울에서 벼슬자리에 있었고, 이 곳에는 그의 부인 혼자만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남편이 보고 싶어 때마침 찾아온 노승에게 남편과 만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애원하였다.
노승은 마당 가운데 있는 연못에 소금 석 섬을 뿌리고 동네 입구의 바위를 깨뜨리라고 하였다. 부인이 그대로 하자 못 안의 수양버들에서 놀고 있던 학 세 마리가 날아가 버리고 사흘 뒤 남편은 시체로 돌아왔다. 그 뒤 이 마을에는 벼슬이 끊어지고 학이 날아간 봉계와 창촌은 번창해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고 한다. 지금도 못이 남아 있고, 깨뜨리다 남은 바위는 정승바위라 해 마을 어귀에 남아 있다.
한편, 힘센 장사 황울산도 차지하지 못한 명당에 관한 「명당설화」가 봉산면 일대에 전해 온다. 정씨네와 황씨네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함께 상을 당하였다. 두 집안은 서로 태평사(太平寺) 뒷산의 명당에 묘를 쓰려 하였다. 황울산을 두려워한 정씨네는 두 개의 상여를 준비해 빈 상여와 황씨네 상여가 마주치게 하였다. 황울산이 정씨네의 빈 상여를 붙잡아 두었으나, 황씨네 상여가 묘소에 당도했을 때 이미 정씨네는 ‘달고’소리와 함께 장례를 마치고 있었다. 화가 난 황울산은 정씨네가 새로 세운 비석을 주먹으로 쳐 두 조각 내 버렸다. 이후 황씨네는 몰락해 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지금도 반 토막 비석이 남아 있다는 설화이다.
그리고 김천(金泉)이라는 이름은 옛날 김천지방에 금지천(金之泉)이라는 샘물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다. 이 샘에서 금이 난다고 해 금지천이라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의 대장 이여송(李如松)이 이곳을 지날 때 이 샘의 물맛을 보고 자기 나라 금릉땅의 과하천(過夏泉) 물맛과 같이 좋다고 칭송해 이 곳 금지천을 과하천이라고도 불렀다.
그 밖에도 지명유래담인 구성면의 「장자동설화」와 수도암석불·태평재·바위백이·여우우물·봉우재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 가운데 농업노동요와 여성노동요가 중심을 이룬다. 농업노동요로 「모찌기노래」는 사설을 주고받는 교환창으로 부르면서 “들어내자, 절우자(쪄내자)” 등 작업과정을 말하는 사설로 부르기도 하고, “저승체사(차사) 이명순아/ 이모자리 훔쳐가소/ 저승체사 강남도령/ 요모자리 막아주소.”라고 해 모 쪄내는 일이 힘드니 차라리 저승차사들(다른 지방에서는 이명순을 이맹추라고 함)이 모판을 훔쳐가 버리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모내기노래」는 “성주함창 공갈못에”나 “물꼬철철 헐어놓고” 또는 “연밥따는 저처자야” 등의 보편적인 사설이 많고, “서울이라 냉기(나무)없어/ 금봉채로 다리나아”와 같이 “서울이라”로 시작하는 사설이 꽤 있어 서울과의 왕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논매기노래」는 「모내기노래」보다 우세한 지역이라고 조사되었으나 채록되지 않았고, 나무할 때 부르는 「어사용」도 전승된다고 하나 조사되지 않았다.
여성노동요도 많이 불리는데 “한골매고 두골매고/ 이삼세골 거듭매니/ 다른점슴 다나와도/ 이내점슴 아니나와/ 점슴바래 내가왔네/ 그것따나 일이라고/ 때를타고 시를타나/ 에라요년 물너쳐라.”는 「밭매기노래」로 시집식구들이 끼니도 제대로 주지 않고 학대해 결국은 중이 된다는 시집살이의 고난을 줄거리로 한 서사민요이다.
이 노래 외에 여성노동요에서 시집살이의 고난이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된 사설이 적은 것이 이 고장 민요의 특징이다. 「베틀노래」도 “월강에 노든손님/ 세상에 내려와서/……부헤라 두른양은/ 허리안개 두른덧다/ 말코라 감은양은/ 삼대독자 외동아들/ 멩(命)캉 복(福)캉 감은 덧고……바디집 치는 소리/ 성군이 옥패로다……”라고 해 베틀을 놓고 베 짜는 광경을 여러 가지 비유로만 노래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밤새도록 삼을 삼을 때 부르는 노래는 “활티재이 불밝혀라/ 지례짐산 진삼가래/ 아니거창 뻗쳐놓고/ 여선가래 반을주자/ 달에삼고 불에삼고/ 어심새북(새벽) 삼고나니……”라고 해 밤새 긴 삼가락을 삼는 광경을 그리기도 하고, “잠아잠아 오지마라/ 잠온말 다들으면/ 칠월질쌈 묵어난다……”라고 해 일할 시기를 놓치면 다음 일에 지장이 있으니 꼭 잠을 쫓고 고되지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노래하기도 한다.
물레질할 때 부르는 「물레노래」로는 보통 물레가 잘 돌아가는 모양에다 자신의 신세나 어떤 바람을 싣고 있는데, “물레씨가 병이났네/ 괴무리난 요동하고……김천장 길이달아/ 참깨 한되 팔아다가/ 그 기름 짜가지고/ 참깨국을 바르니까/ 째깍하며 돌아가데.”라고 해 물레가 고장나서 고치기까지를 노래하는 특이한 사설이 불린다.
그 밖에도 「바느질노래」·「댕기노래」·「정노래」등이 있으며, 「잠자리」·「뱀노래」·「대문따기」·「윷놀이」 등이 있고, 유희요 등도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총경지면적은 1만 6915㏊로, 경지율은 약 17%로 낮은 비율을 보인다. 이 중 논은 7,518㏊로 약 44%를 차지하고 밭은 9,397㏊로 약 56%를 차지해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높은 비율을 보인다. 금릉평야와 개령평야를 중심으로 한 쌀·보리 등의 주곡 이외에 포도·사과·배 등의 과일과 오이·호박·배추·토마토·상추 등의 채소류, 참깨·들깨·아주까리·표고버섯·황색잎담배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조마면의 굵고 맛 좋은 감자, 감문면의 시원하고 당도 높은 금싸라기참외, 어모면·감문면·개령면의 완초, 봉산면·대항면의 표고버섯, 지례면의 재래종 돼지가 유명하다.
광공업은 영세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2008년 현재 광구 수는 20개로 가행 중인 광구는 10개가 있다. 특히 지례면 상부리에는 매장량이 많은 규석의 노천광이 있다. 광산물의 생산을 살펴보면 규석은 지례면·봉산면·대덕면, 고령토는 구성면·대덕면, 장석은 조마면에서 산출된다.
공업을 보면 1990년대 들면서 구성면의 직강공사로 인한 지방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곳곳의 산업기반을 유도, 낙후되어 가는 농촌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08년 현재, 감문·지례·아포·대광, 4개의 농공단지와 김천1·2차 산업단지 등 총 5개의 산업단지가 1988년~1999년에 걸쳐 298만 4000㎡ 면적에 조성, 총 86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종사자 수는 4,001명이다. 감문·아포·지례 농공단지의 경우 대부분 전자전기 부문 제조업체들이 입주해 있고, 김천 산업단지와 대광농공단지는 같은 지역에 집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큰 규모의 공장지대를 구성하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는 갈포벽지·영신당 붓·김천유기(金泉鍮器)·과하주(過夏酒)가 있다. 갈포벽지는 베처럼 짠 갈포를 염색하고 뒷면에 종이를 바른 것으로, 벽지라기보다는 가벼운 돗자리처럼 보이는 고급벽지로 방음·방습·광택이 뛰어나 수출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남산동영신당필방에서 족제비털·양털·노루털을 재료로 여러 번의 잔손질을 거쳐 생산되는 붓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다. 또한 김천은 경기도 안성과 같이 예로부터 유기(鍮器)로 유명했으며 소리를 생명으로 하는 징과 꽹과리가 대표적이다. 과하주는 남산동 지게마을 서쪽에 있는 과하천의 물·누룩·찹쌀로 빚어 내는 김천지방의 전통민속주로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상업활동을 보면 김천은 예로부터 경상북도지역 육로의 주요 경유지로서 역이 설치되어 상업이 발달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78개 상설점포가 개설되었고, 정기시장도 형성되어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3도 상인이 모여들었다. 따라서 김천장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말기까지 대구·평양·전주·강경과 더불어 전국 5대 시장으로 꼽혔으며, 지금도 3도에서 곡식과 과일이 모여들어 삼도시장(三道市場)이라는 별명과 함께 활기를 띤다. 1830년대에는 매월 2일과 7일에 남면·개령읍·아산, 3·8일에 이수천, 4·9일에 금산읍·추풍·지례읍, 5·10일에 김천장 등의 5일장이 각각 열려 주로 농산물과 소·건어물·마포·종이 등이 거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경에는 김천·지례·대덕 등의 정기시장만 남게 되었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는 동안 5일장이 크게 성장해 1959년에는 10개로 늘어났으나, 1960년대 이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교통이 발달하자 상설점포가 점점 늘어나고 정기시장은 줄어 남면장·아포장·부항장·구성장 등이 폐지되었다.
1985년에는 금라·이천·도평·지례·삼곡·대덕·증산 등 7개의 5일장만 공설로 열렸다. 이들 시장에서는 이 지역 특산물인 감자·포도·돗자리·메주·인삼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과 소가 거래된다. 2008년 현재 재래시장은 감호시장, 황금시장, 평화시장, 부곡시장, 중앙상가 등 총 5개소가 있으며, 2개의 대형 할인점이 있다.
김천시의 교통은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선이 지나고 있으며, 국도 4호선이 영동~대관, 3호선이 상주~거창 간을 지나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김천시 서쪽에 소백산맥과 남쪽에 가야산맥의 수려한 산들을 끼고 있어 산악·사찰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김천시는 경부선과 경북선의 분기점이며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국도가 여섯 방향으로 뻗어 있는 교통의 요충지로, 서부 산악지대를 제외하면 교통이 편리해 관광객 유치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특히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이 창건한 직지사는 도심과 가까운 대항면 운수리의 천년노송과 옥류가 흐르는 황악산 중턱에 위치한 대사찰로, 1971년에 지정관광지가 되었다. 경내의 천불전에는 고려시대 경장대사가 경주옥돌로 조각한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사명각에는 직지사에서 머리를 깎고 속세를 등진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비로전 앞 삼층석탑·석조약사여래좌상·대웅전 삼존불탱화 등의 보물과 일주문·부도군·당간지주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직지사 산내암자로는 화장암·운수암·백련암·은선암 등이 있으며, 최근 개관한 성보박물관에는 직지사 관할 말사에서 거두어들인 불교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경치가 좋은 내원사 계곡과 운수계곡이 있다. 직지사 주위에도 비로봉, 우거진 노송, 신선대의 학떼 등 명소가 많아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증산면 수도산에는 도선대사가 창건한 청암사가 있는데, 경상북도에서 불교강원으로 손꼽히는 승가대학이 들어서 있다. 청암사 경내에는 인현왕후가 복위를 기원하며 한 많은 세월을 보냈던 극락전, 청암사를 대표하는 42수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보광전, 인도식 불상이 모셔져 있는 대웅전이 있고, 이 외에도 석탑과 범종·큰북 등의 문화재들이 있다.
산내암자로는 백련암·수도암이 있다. 청암사로 들어가는 ‘불령동천(佛靈洞天)’이라 부르는 계곡 주위에는 유난히 바위가 많다. 또한 수도산 일대를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수도계곡에는 누워 있는 용의 형상을 한 와룡암과,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깃들인 용소폭포가 있다. 주민들은 가뭄이 들 때마다 이 폭포 아래에서 기우제를 지낸다.
이 외에도 옥구슬같이 물방울이 바위 위를 흘러내리는 옥류대, 흐르는 물살에 온갖 번뇌를 씻어 보낸다는 수선대 등이 절경을 이룬다. 수도산 산정에는 신라 말경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수도암이 있으며, 수도암 대적광전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약광전석불좌상과 수도암터를 가리키는 석물인 돌실패 등의 보물이 있다.
수도산에는 거자나무가 자생하며 매년 곡우절이 되면 위장병과 신경통에 특효를 보이는 곡우물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다. 그 밖에 모암동 국도변에 있는 자산(紫山)의 사모암과 교동의 봉황대, 황금동의 개운사·관음사·신흥사, 남산동의 남산공원과 과하주천, 개령면 동부리개령향교 뒤편에 자리잡은 계림사 주변도 경치가 아름다워 소풍지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황악산 남쪽의 고성산록에 있는 벚꽃화원인 고성산송정(高城山松亭)은 오래 전부터 소나무가 우거지고 진달래가 많이 피는 명승지이다. 또한 남면 오봉리의 석가여래좌상, 구성면 송죽리 일대의 구성유원지, 조마면 신곡리의 백화동, 봉산면 북단의 추풍령 휴게소 등도 휴양관광지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아포읍(牙浦邑)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53.25㎢, 인구 8,44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국사리이다. 본래 개령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東面), 선산군 상고면·부곡면을 병합해 아포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아포면이 되었으며, 1995년 읍으로 승격되고,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읍의 남동부는 효자봉을 중심으로 제석봉(帝錫峰)·국사봉(480m) 등의 산지로 되어 있고, 읍의 서부는 구릉성 산지이다. 감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멀지 않는 하류지역이며, 시에서는 가장 넓은 원창평야(元昌平野)를 안은 평야지대이다. 읍의 서부를 흐르는 연봉천은 감천으로 흘러들고, 개령면·감문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읍의 북서단은 감천이 관류하며 연안에 넓은 평야가 발달하였다.
총경지면적 17.83㎢로 33.3%, 임야면적 25.07㎢로 46.9%, 기타 19.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2.30㎢로 69.0%를 차지하고 밭이 5.53㎢로 31.0%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고추·토마토·오이·사과·복숭아 등도 많이 생산된다. 그 외에 돼지·개 등의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김천~가산간 지방도 등이 읍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해 김천·구미 방면과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신리와 봉산리에 고분군이 있다. 명소로는 국사리의 대지(大池, 일명 韓池)와 제석리의 길지(吉池)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2. 감문면(甘文面)
시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59.35㎢, 인구 3,79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보광리이다. 신라시대에는 감문국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김산군과 개령군에 속하였다. 1910년 김천군 위량면(位良面)과 곡송면(谷松面)으로 개편되었으며, 1934년에 두 면을 통합해 감문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감문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감문면의 지형은 동서간은 길고 남북간은 짧으며 남북일대는 평야지, 기타는 산간지에 속한다. 면의 북부는 백운산(白雲山, 618m)을 중심으로 산지를 이루고, 남서부는 구릉성 산지이다. 면의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본리천이 개령면의 아천과 합류해 감천으로 흘러 들어가며, 동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외현천(外現川)은 대촌동 부근에서 감천과 합류한다. 하천유역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총경지면적 18.40㎢로 31.0%, 임야면적 33.92㎢로 57.1%, 기타 11.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2.12㎢로 65.9%를 차지하고 밭이 6.28㎢로 34.1%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경지율이 높은 편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채소·과일 등이고 왕골·황색잎담배·유지작물 등 특용작물도 많이 재배한다. 특히 참외는 시원하고 당도가 높아 특산물로 유명하며, 한우·젖소·개·닭 등의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어모∼아포간의 군도와 면의 중앙부에서 교차해 구미와 연결된다. 감문국(甘文國)으로 인한 고대유적지가 시내에서는 가장 많이 산재한다. 문화유적은 광덕산 서쪽의 문수사(文殊寺)와 약수터, 광덕리의 석조관음보살입상, 광덕지(廣德池) 아래의 미륵·임소애굴 등이 있으며, 삼성리에는 감문국의 김효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고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3. 감천면(甘川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27.51㎢, 인구 2,230명(2015년 현재). 김천시 내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면이며 면 소재지는 광기리이다. 본래 성주군 신곡면(薪谷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산군 길가대면 9개 이와 조마면 신평동 일부를 병합해 감천의 이름을 따서 감천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 지좌동이 김천읍으로 편입되었고,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감천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고당산(姑堂山, 579m)·응봉산(鷹峰山, 323m)이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감천이 면의 서쪽 경계를 따라 북류하면서 형성한 금릉평야를 제외하면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이다.
총경지면적 7.09㎢로 25.7%, 임야면적 15.42㎢로 56.0%, 기타 18.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37㎢로 75.7%를 차지하고 밭이 1.72㎢로 24.3%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배추·양배추·당근 등의 채소류와 마늘·왕골 등의 특용작물을 많이 생산한다. 광기리에서는 사과·포도, 금송리에서는 사과·배, 무안리에서는 사과를 재배하며, 용호리에서는 양잠을 많이 한다.
김천~금수간 지방도가 면의 서부를 관통하며, 도평리에서 갈라져 나온 군도로 농소면과 연결된다. 금송리의 원동마을에는 사미정(社美亭)을 헐고 그 자리에 경렴서원을 건립했으나 지금은 그 자리만 남아 있다. 용호리의 입암마을에는 바위가 넘어지면 마을에 큰 재해가 있다고 전해지는 높이 2m, 둘레 3m의 큰 자연암이 있고, 무안리의 통정마을에는 마시면 장수한다고 전해 오는 통샘물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4. 개령면(開寧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7.51㎢, 인구 2,8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부리이다. 본래 개령군 지역으로 부곡(富谷) 또는 적용(赤用)이라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면의 12개 이와 농소면 신촌, 금산군 천하면(天下面) 오청동(五淸洞), 위량면 나가동(羅加洞)을 병합해 개령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개령면이 되었고,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북동부와 남서부의 일부는 구릉성 산지이고, 아천이 면의 남서부를 관류해 감천에 유입되며, 면의 남동 경계를 따라 감천이 흐르고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개령평야)가 발달해 있다.
김천시 제일의 곡창지대로, 총경지면적 11.21㎢로 40.3%, 임야면적 11.01㎢로 39.5%, 기타 20.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75㎢로 69.1%를 차지하고 밭이 3.46㎢로 30.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콩·오이·호박·마늘 등도 많이 생산한다. 특히 오이의 생산이 많으며, 젖소의 사육도 활발하다. 남전리에서는 포도·복숭아·자두 등을 많이 생산한다.
교통면으로는 김천~안계간 지방도가 면의 남동 경계를 따라 통과하며, 김천~무을간의 군도가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문화유적은 동부리에 개령향교와 계림사, 서부리에는 옛 감문국의 장부인(障夫人) 능이라고 전해지는 고분인 장릉이 있었다. 광천리는 무형문화재인 금릉빗내농악이 전승되어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5. 구성면(龜城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95.42㎢, 인구 3,2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좌원리이다. 본래 개령군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산군 대항면 백어동을 병합해 석현면(石峴面)이라는 이름으로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34년 과곡면(果谷面) 전역을 병합하고, 지례군의 옛 이름인 구성(龜城)을 따서 구성면이라 했으며,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으로써 금릉군 구성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산지이며, 북서부에 고성산·덕대산(812m)·호초당산(虎草堂山, 893m)·우두령 등의 산악지대를 형성한다. 면의 중앙을 감천이 관류하며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감천의 여러 지류는 산지간을 침식하고 양각리 부근에서 산간분지를 이룬다.
총경지면적 15.92㎢로 16.7%, 임야면적 70.67㎢로 74.1%, 기타 9.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82㎢로 61.7%를 차지하고 밭이 6.10㎢로 38.3%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무·배추·양파·마늘 등이 있으며, 특히 양파의 생산이 많다. 한우·돼지·사슴·개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흥평리에서는 재래식 종이인 구성한지(龜城韓紙)를 생산한다.
도로는 시의 중앙부를 삼천포∼초산간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며, 지례~용산간 지방도와 구성~대항간 군도가 국도에서 갈라져 이 곳과 북서부지방을 연결한다. 구성면의 문화유적은 흥평리의 덕재산성(德載山城), 상좌원리의 도동서원(道洞書院) 강당, 상원리의 방초정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분교 1개교가 있다.
6. 남면(南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0.43㎢, 인구 2,59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산리이다. 개령군의 남쪽에 위치해 남면이라고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남의 2개 면과 금산군 연명면의 일부, 농소면의 일부를 병합해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남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동남은 산악지대에 속하고 남북은 평야지대에 속한다. 면의 동부는 금오산에 이어지는 험준한 산지이며, 남부는 영암산(鈴巖山, 782m)과 백마산을 잇는 산령의 북사면에 해당한다. 면의 남동부에서 발원한 연봉천(延鳳川)·송곡천(松谷川) 등은 중앙부를 서류하면서 감천으로 흘러 들어가며,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동쪽 계곡에는 오봉저수지(梧鳳貯水池)가 있어 관개가 편리하다.
총경지면적 13.01㎢로 18.4%, 임야면적 48.52㎢로 68.8%, 기타 12.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67㎢로 59.0%를 차지하고 밭이 5.34㎢로 41.0%를 차지해 논농사가 조금 더 높은 비율을 보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채소류·과실류 등이고, 황색잎담배·깨·들깨 등의 특용작물도 많이 생산한다. 젖소·돼지·개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도로는 면의 북서부 경계를 따라 경부고속도로, 경부선 철도 및 김천~가산간 지방도가 나란히 통과하며, 면의 중앙을 군산~감포간 국도가 횡단해 김천·구미·왜관·대구 등지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오봉리에 갈항사터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7. 농소면(農所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69㎢, 인구 3,3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곡리이다. 삼한시대에는 감문소국이었고, 조선시대에는 개령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농막이 있었으므로 농소면이라 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령면·농소면 일원의 13개 이와 금산군 연명면의 3개 이를 병합해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농소면이 되었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남쪽 2/3는 산악지대이고 북쪽 1/3은 평야지대이다. 남동부는 별미령·백마산(716m) 등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높은 산지이고 서부는 구릉성 산지이다. 두 산지 간을 하천이 깊이 침식해 있으며, 감천의 지류인 율곡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며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9.84㎢로 21.5%, 임야면적 29.10㎢로 63.7%, 기타 14.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66㎢로 67.7%를 차지하고 밭이 3.18㎢로 32.3%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복숭아·자두·포도 등의 과일과 담배·깨·들깨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양봉과 한우·개 등의 가축사육이 이루어진다.
도로는 면의 북부 경계를 따라 경부고속도로, 경부선 철도와 김천~가산간의 지방도가 나란히 통과하며 군산~감포간의 국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통과하고,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수륜∼남면간, 조마∼농소간, 농소∼노곡간의 군도가 남북으로 관통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봉곡리에 고방사가 있고, 피부병에 좋은 고방사약수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8. 대덕면(大德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98.37㎢, 인구 2,4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관기리이다. 원래 지례군에 속해 있었으나,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상남(上南)·하남(下南)·외남(外南)의 3개 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08년에 대덕산의 이름을 따서 대덕면이라 칭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대덕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감천의 상류 및 그 지류가 산지 속을 깊이 침식하며 흐르고 있을 뿐, 면의 대부분은 높은 산지이다. 서부에 대덕산(大德山, 1,290m), 남부에 월매산(月梅山, 1,023m)·국사봉(國士峰, 875m), 동부에 삼방산 등이 있다. 대덕산 북쪽의 주치령은 전라북도와 경상북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총경지면적 10.95㎢로 11.1%, 임야면적 80.74㎢로 82.1%, 기타 6.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35㎢로 58.0%를 차지하고 밭이 4.60㎢로 42.0%를 차지해 논농사가 약간 더 많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담배·포도·인삼과 고랭지채소 등도 생산된다. 양봉 및 한우·산양·닭 등의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삼천포~초산간의 국도와 변산~대구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교차해 김천·거창·성주·무주 등지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조룡리의 섬계서원과 봉곡사(鳳谷寺)가 있다. 중산리 골짜기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룡리에는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9. 대항면(代項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44㎢, 인구 4,04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향천리이다. 본래 김산군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동군 황남면의 9개 이와 미곡면의 이로동 일부 및 파미면 하지동의 일부를 병합해 대항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대항면이 되었고, 1973년 봉산면 복전동을 편입했으며,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하였다.
북동부 일부만 제외하고는 직지천에 충적평야가 있을 뿐 면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며, 특히 서부는 천덕산(千德山, 986m)·황악산·바람재·우두령 등의 높은 산지가 이어져 충청북도와의 도계를 이루고, 남부에도 호초당산·덕대산 등의 높은 산이 있다.
총경지면적 9.38㎢로 14.2%, 임야면적 52.16㎢로 78.9%, 기타 6.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07㎢로 64.7%를 차지하고 밭이 3.31㎢로 35.3%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복숭아·자두 등의 과일과 깨·들깨·황색잎담배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생산된다. 돼지의 사육도 이루어진다.
도로는 경부선이 면의 북부를 통과하고 김천∼마성간 지방도가 면의 북서부지방과 연결되며, 구성∼대항간 군도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문화유적은 운수리황악산 기슭에 직지사가 있으며,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 비로전 앞의 삼층석탑, 대웅전 삼존불탱화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10. 봉산면(鳳山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45㎢, 인구 3,6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리이다. 본래 김산군 지역으로 황금소(黃金所)의 남쪽에 위치해 황금면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파미면의 5개 이와 대항면·군내면의 일부를 병합하고, 태화동에 있는 봉산(鳳山)의 이름을 따서 봉산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봉산면이 되었으며, 1973년 복전동이 대항면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아천고개·장등고개·사기점고개 등에서 발원해 남류하는 하천들이 직지천으로 흘러든다. 면의 남부를 동류하는 직지천의 연안평야를 제외하면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서쪽 경계에 있는 눌의산이 최고봉이다. 추풍령은 소백산맥의 고개 가운데 높이가 가장 낮은 고개로서, 1911년 경부선 철도,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뒤로는 전국적으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고개가 되었다.
총경지면적 9.52㎢로 16.9%, 임야면적 40.48㎢로 71.7%, 기타 11.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42㎢로 67.4%를 차지하고 밭이 3.10㎢로 32.6%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특히 토란·딸기·포도·감 등의 생산이 많고 젖소·사슴·토끼·닭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도로는 경부고속도로, 군산~감포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관통하며, 대항~봉산간, 봉산~김천간의 군도 등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예지리에 봉암서당, 태화리에 가막사지(嘉幕寺址)와 석탑, 덕천리에 용화사 관음석불상, 인의리에 율수재, 신암리에 태평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11. 부항면(釜項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82.72㎢, 인구 1,3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등리이다. 본래 지례군 지역으로 지례읍의 서쪽에 있어 서면(西面)이라고 했으나, 1911년 상면(上面)과 하면(下面)으로 분리되어 13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개 면을 다시 병합하고 어전리에 있는 부항령(釜項嶺)의 이름을 따서 부항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부항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서쪽은 삼도봉(三道峰, 1,176m)을 중심으로, 북쪽은 황악산(黃岳山, 1,114m), 남쪽은 대덕산(大德山, 1,290m)으로 이어지는 영(嶺)으로 대체로 고지대이며, 특히 서쪽에는 삼도봉을 비롯한 1,000m 이상의 높은 산이 이어져 전라북도와의 도계를 이룬다. 반면 동쪽은 저평한 지대이다. 산지 사이를 부항천·구남천(九南川) 등의 지류가 나뭇가지 모양으로 산지를 깊이 침식해 흐르면서 감천에 유입된다.
총경지면적 9.72㎢로 11.8%, 임야면적 68.87㎢로 83.3%, 기타 5.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62㎢로 57.8%를 차지하고 밭이 4.10㎢로 42.2%를 차지해 논농사가 약간 더 많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황색잎담배·호두·감 등의 생산이 많다. 개·산양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이 활발하다. 특히 사등리와 안간리에서 호두가 많이 생산되며, 파천리에서는 산나물·토종꿀이 생산된다. 하대리에는 버드나무를 이용한 수공예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도로는 부항~율곡간의 군도가 면의 중앙에 나 있을 뿐이어서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어전리에 부항령성터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분교 1개교가 있다.
12. 어모면(禦侮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28㎢, 인구 4,86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왕리이다. 본래 어모현(禦侮縣) 지역으로 조선 태조 때 금산군에 편입되어 직촌(直村)이 되었다. 그 뒤 아천의 이름을 따서 아천면이라 하고, 다시 상촌(上村)·하촌(下村)의 두 면으로 나누어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소면(求所面)과 개령군 서면(西面)의 일부를 병합해 김천군에 편입되었으며, 1934년 구소면 전체를 병합하고 옛 현의 이름을 따서 어모면이라고 하였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어모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2000년 읍면동 기능전환으로 어모면에 주민자치센터를 시범 실시하였다.
지형은 동남에서 서북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으로 대부분 산악지대에 걸쳐 있다. 면의 서부는 묘함산(卯含山, 733m)·문암봉(門巖峰, 590m)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지로서 충청북도와 도계를 이루며, 동부는 구릉성 산지이다. 면의 중앙부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아천이 은기동 부근에서 산간분지를 이루고, 본리천과의 합류지점 부근에서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16.36㎢로 25.1%, 임야면적 41.34㎢로 63.3%, 기타 11.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0.9㎢로 66.6%를 차지하고 밭이 5.46㎢로 33.4%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채소류·과일류 등이며, 특히 왕골·아주까리 등의 생산이 많다. 어모면 일대는 예로부터 왕골의 생산지로 적합해 질 좋은 돗자리를 생산한다. 젖소·돼지·닭 등의 가축사육도 이루어진다. 구례리에서는 포도·자두·복숭아 등의 과일과 양파·마늘 등이 많이 생산되며, 군자리에서는 완초를 재배한다.
도로는 사천~초산간의 국도와 경북선이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해 김천·상주·문경 등지와 연결되며, 농소~노곡간 및 어모~아포간의 군도가 면의 동서지역을 연결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능치리용문산(龍門山)의 야무사지(也無寺址)에 좌상석불과 초석(礎石)이 남아 있으며, 흑운산(黑雲山)에는 복침사(伏枕寺) 난암(卵庵)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13. 조마면(助馬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0.95㎢, 인구 2,56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강곡리이다. 신라시대에는 조마부곡(助馬部曲)이었으나 고려시대에 금산군에 편입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조마남면(助馬南面)이 되어 22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천면의 9개 이를 병합해 조마면이라 하고,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조마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북부지방은 감천유역에 발달한 평야가 많지만, 남부는 산악지대로 농경지가 협소하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남단에 염속산(厭俗山, 870m)의 가지가 북쪽으로 뻗으면서 연석봉(蓮石峰, 594m)·동견산(東犬山)·신달이산(469m)·불두산(佛頭山, 428m) 등이 솟아 있어 그 동쪽과 서쪽에 큰 골짜기를 이루고, 북부에 감천이 흐르며 그 연안에 약간의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총경지면적 10.04㎢로 14.2%, 임야면적 53.74㎢로 75.7%, 기타 10.1%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14㎢로 71.1%를 차지하고 밭이 2.90㎢로 28.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깨·들깨·황색잎담배·사과·포도·배·자두 등의 생산이 많다. 특히 굵고 맛 좋은 왕감자가 생산되어 특산품으로 유명하며 돼지사육이 활발하다. 장암리에서는 감자와 파를, 삼산리에서는 참외와 오이를 많이 생산한다.
도로는 금수~김천간, 거창~김천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서부를 나란히 관통하고, 그 사이를 조마~농소간의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대방리의 성궁마을에 옛날 무사들이 활을 쏘던 궁청(弓廳)이 있고, 신안리의 지동마을에는 조선 정조 때부터 고개를 왕래하는 행인들이 여로의 무사함을 비는 서낭당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14. 증산면(甑山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5.04㎢, 인구 1,26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유성리이다. 본래 성주군에 속했으나 1906년 지례군에 편입되어 내증산면과 외증산면으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천군에 편입되었고,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증산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증산면은 산악지대가 대부분이고 농경지는 협소하다. 면의 중심부에 시루봉이 있는데 산의 모양이 시루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증산(甑山)’이라는 명칭은 이 시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동쪽에는 성주군와의 경계에 형제봉(兄弟峰, 1,020m)이 솟아 있고, 남쪽에는 거창군과의 경계에 단지봉(丹芝峰) 및 좌일곡령(座壹谷嶺, 1,258m)을 잇는 가야산맥이 뻗어 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대체로 남서가 높고 북동이 낮은 지형이다. 대가천(大伽川)이 남동부·서부·북부 산지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며, 원류부에 산간분지 및 좁은 침식곡을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6.78㎢로 9.0%, 임야면적 64.95㎢로 86.5%, 기타 4.5%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47㎢로 51.2%를 차지하고 밭이 3.31㎢로 48.8%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양파 등의 채소 생산량이 높고, 특히 일당귀·일천궁·적작약 등 약용식물의 생산이 많고, 황색잎담배도 많이 재배된다. 한우 사육도 활발하다. 유성리에서는 예로부터 한지를 생산해 왔으며, 황점리에서는 담배·약초 등의 특산물을 생산한다. 옥동마을의 증산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맑은 천연수로 빚은 솔향이 그윽한 막걸리는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도로는 지례~가천간의 군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면산~대구간의 국도가 동서로 통과하며 유성리에서 교차해, 이 면을 다른 지역과 연결한다. 문화유적은 수도리의 수도암에 석조비로자나불좌상·수도암(修道庵)삼층석탑·약광전석불좌상 등이 있다. 평촌리의 수도산에는 청암사(靑巖寺)가 있는데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원당으로 유명하며, 조선시대에 허정(虛靜)이 중창해 화엄종을 선양하였다. 유성리에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해 청암사·수도암을 관할하던 쌍계사가 있었으나 6·25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분교 1개교가 있다.
15. 지례면(知禮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15㎢, 인구 1,8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교리이다. 본래 지례현 지역으로 현청이 있어 하현면(下縣面)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현면(上縣面)의 7개 이와 외증산면(外甑山面)의 8개 이를 병합하고 옛 현의 이름을 따서 지례면이라고 개칭해 김천군에 편입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지례면이 되었다가 1995년 새로운 김천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으나, 삼방산(三芳山, 863m)을 제외하면 높은 산은 별로 없다. 대체로 남동부가 높고 북서부가 낮은 지형이다. 북서부에서 산간을 흐르는 감천의 하곡을 따라 좁은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7.77㎢로 14.4%, 임야면적 41.92㎢로 77.4%, 기타 8.2%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35㎢로 56.0%를 차지하고 밭이 3.42㎢로 44.0%를 차지해 논농사가 좀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맥류·두류 등이며, 파·마늘·들깨·호박·감 등의 생산도 많고 한우와 돼지·산양의 사육이 많다. 도곡리에서는 양잠을 많이 한다.
지례면의 중심지인 교리에서는 4·9일에 장시(場市)가 열린다. 지례면 돼지고기 식당가에서는 지례토종돼지를 주재료로 만든 각종 요리를 선보이는데, 이 중 왕소금구이는 쫄깃쫄깃 고소하고 껍질이 딱딱한 지례돼지고기 특유의 진미를 즐길 수 있게 한다.
도로는 사천~초산간의 국도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고, 금수~김천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그 사이를 부항~율곡간의 군도 및 지례~가천간의 군도가 연결하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상부리의 은적암(隱跡庵), 관덕리의 궁곡사지(弓谷寺址), 교리의 구산성지와 지례향교가 있다. 상부리에는 남평문씨(南平文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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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善州
주02
지금의 김천
주03
지금의 김천
주04
지금의 지례면
주05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주06
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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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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