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화한인청년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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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근대사
단체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
이칭
약칭
남화연맹
단체
설립 시기
1930년
설립자
유자명, 유기석 외
설립지
중국 상하이
소재지
중국 상하이
후신
조선혁명자연맹
발간지
남화통신
내용 요약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아나키즘(anarchism)과 조선의 민족 해방을 선전하는 활동,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친일 분자를 숙청하는 직접 행동을 실행하였다. 1937년 조선혁명자연맹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목차
정의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
변천 및 현황

1930년 4월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유자명(柳子明), 주1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로, 주2 이후 중국 관내와 만주, 일본 그리고 조선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여들어 가담하였다.

맹원(盟員)은 유자명, 유기석 외에 이회영(李會榮), 정화암(鄭華巖), 백정기(白貞基), 원심창(元心昌), 박기성(朴基成), 엄형순(嚴亨淳), 이규창(李圭昌), 이용준(李容俊), 주3, 이강훈(李康勳), 김성수(金聖壽), 오면직(吳冕稙), 주4, 이달(李達), 나월환(羅月煥), 김광주(金光州) 등이었다.

산하에 남화구락부(南華俱樂部)를 두고 기관지로 『남화통신(南華通信)』을 발행하였다. 또한, 중요 기념일마다 격문을 적고 발송, 배포하는 선전 활동을 하였다.

1930년 10월 중국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국제적 의열 단체인 주5을 결성하였다. 항일구국연맹은 적의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및 친일 분자 숙청, 항일 선전 활동 등을 실천하기 위한 직접 행동대로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였다.

이회영과 정화암이 지휘한 흑색공포단이 실행한 대표적인 직접 행동은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공사 암살 시도가 있었다. 1933년 3월 17일 상하이의 육삼정(六三亭)이라는 식당에서 아리요시가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접한 남화연맹원들은 그를 암살하고자 백정기, 이강훈, 원심창 등 3인이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대기하였으나, 거사 실행 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 외에도 1932년 이회영을 일제 경찰에 밀고한 이규서(李圭瑞)와 연충렬(延忠烈)을 사살하였으며, 1933년 일제 밀정 이종홍(李鐘洪), 옥관빈(玉觀彬)과 그의 형 옥성빈(玉成彬)을 사살하였다.

1935년에는 상하이 조선인거류민회(朝鮮人居留民會) 부회장인 이용로(李容魯)와 일제 밀정 이태서(李泰瑞)를 사살하였다. 또한, 중국인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난징[南京] 주6의 친일 외교부장 왕징웨이[王精衛] 저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푸젠성[福建省] 샤먼[廈門]에서 일본 영사관을 폭파하였고, 톈진[天津]에서 일본군 병영과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등 다른 계열 민족 운동 진영과 연대를 추진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혁명자연맹(朝鮮革命者聯盟)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朝鮮民族解放運動者同盟)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조직하고 산하의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통해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호룡, 『한국의 아나키즘- 운동편』(지식산업사, 2015)
박환, 『식민지시대 한인아나키즘 운동사』(선인, 2005)

논문

차현지, 「1930년대 항일아나키스트단체 남화한인청년연맹의 이념과 활동」(『한국학』 42,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
박찬승, 「1933년 상해 ‘有吉明공사 암살미수 사건’의 전말」(『한국독립운동사연구』 60,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김명섭, 「류자명의 항일 의열활동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 52,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5)
주석
주1

아버지 유찬희(柳纘熙)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은 유기석(柳基石)은 동생 유기문(柳基文)과 함께 중국 관내를 거점으로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5년 1월 12일 황해도 금천에서 출생하였으며, 1920년 흥사단(興士團)에 입단하여 원동위원부(遠東委員部)에서 활동하였다. 베이징 유학 중 아나키즘을 수용하며, 독립운동의 사상적 방략으로 삼았다. 1930년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고, 1932년 동생 유기문 등과 함께 결행한 ‘톈진[天津] 투탄 의거’, 1938년 일본 군함 폭침 의거 등 본격적인 의열 투쟁에 나섰으며, 이후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여 초모활동(招募活動)을 전개하였다.

주2

1931년 류탸오후[柳條湖] 사건을 계기로 시작한 일본군의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에 대한 침략 전쟁. 일본의 관동군(關東軍)은 둥베이 삼성(三省)을 점령하고 이듬해 내몽골의 러허성[熱河省] 지역을 포함하는 만주국을 수립하였는데, 이것은 그 뒤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우리말샘

주3

형 유기석(柳基石)으로부터 아나키즘을 수용한 유기문(柳基文)은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고 의열 투쟁 조직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결성에 동참하였다. 1932년 12월 톈진[天津]에서 형 유기석이 전달한 폭탄을 일본 기선에 투척하며 ‘톈진 투탄 의거’에 참여하였다. 1935년 흑색공포단이 전개한 친일 변절자 처단 의거에도 가담하는 등 의열 투쟁을 이어나갔으나,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주4

1939년 10월에 충칭[重慶]에서 결성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의 정훈조장(政訓組長)으로 임명되어 대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됨에 따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어 시안[西安]에 본부를 두고 총사령부를 호위하면서 장병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초모(招募) 공작 활동, 적 정보 수집 등을 전개하였다. 1941년 5월에 시안에 있는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中央戰時幹部訓練) 제4단 한청반(韓靑班)에서 교관으로 활동할 때 지대원 간의 불화로 지대장 나월환(羅月煥)이 암살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자 무기징역형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후에 사면되었다.

주5

1931년 10월 말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아나키스트들이 결성한 국제적인 항일 무장 투쟁 단체

주6

1912년, 쑨원을 임시 대통령으로 하여 수립된 중화민국 임시 정부

집필자
윤상원(전북대학교 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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