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지표 조사를 통해 성내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편, 토기편, 도기편, 백자편 등이 확인되었다. 정확한 초축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 이 산성이 경영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노산성과 관련하여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364척, 높이가 4척이며, 안에 우물이 1개소 있다. 지금은 반이 퇴락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금폐(今廢)’로, 『대동지지』에는 ‘노산고성(魯山古城)’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그 기능은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평창 군수 권두문(權斗文)이 백성들과 함께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강원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산성은 평창의 진산인 노성산(해발 419m)에 축조된 산성으로, 평창군 평창읍 하리 산1 및 중리 산10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성의 삼면은 평창강이 휘감아 흐르는 감입 곡류 하천을 이루며 천혜의 절벽을 형성하고 있다. 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여만리 일대가, 남쪽으로 중리, 하리, 천변리 일대가 관망된다. 성의 전체 둘레는 571m로, 절벽으로 이루어진 북쪽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 성벽이 축조되었는데, 능선 바로 아래 부분을 삭토한 후 그 바깥쪽에 성벽을 구축하였다. 서벽의 전체 길이는 약 115m로,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성벽 구간은 길이 820cm, 높이 530cm 정도의 규모이며, 편마암을 이용하여 품(品)자 형태의 면석 쌓기를 하였다. 남벽의 길이는 약 334m로, 산 사면의 일부를 깎아 낸 후 폭 6m의 회곽도를 조성하였다. 성벽은 편축으로 축조되었으나 현재 대부분 무너져 내렸고, 일부 구간에만 석축이 남아 있다. 동벽의 길이는 약 122m로, 이곳에도 내환도가 시설되었다. 성내에는 우물지를 비롯하여 여러 곳의 건물지가 남아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체적인 축조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신라가 북방으로 진출하여 평창 일대를 확보한 후 이곳을 거점성으로 경영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로 볼 때, 통일신라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로서도 그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