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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

    근대사단체

     1909년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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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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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보성중학교(普成中學校) 교장 박중화(朴重華) 등 신민회(新民會) 소속 청년들이 신민회의 이념을 이어받아 국권회복운동을 목적으로 남형우(南亨祐)의 집에서 조직하였다.
    회원은 안희제(安熙濟)·윤세복(尹世復)·윤현진(尹顯振)·김동삼(金東三)·이원식(李元植)·김사용(金思容)·윤병호(尹炳浩)·김기수(金基洙)·박영모(朴永模)·서초(徐超)·김홍량(金鴻亮)·서상일(徐相日)·최인환(崔仁煥)·남백우(南百祐)·임현(林玄)·김규환(金圭煥)·신백우(申伯雨)·서세충(徐世忠)·신팔균(申八均)·김태희(金泰熙)·곽재기(郭在驥)·고순흠(高順欽)·백광흠(白光欽)·김홍권(金弘權)·송전도(宋全道)·고병남(高柄南)·최윤동(崔允東)·배천택(裵天澤)·김관제(金觀濟)·신상태(申相泰)·이범영(李範英)·이병립(李炳立) 등 120여 명이었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망한 이후 남형우·윤세복·김동삼·배천택 등 많은 회원들은 해외로 망명해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국내에 남아 있던 회원들은 1911년 105인사건 뒤 일제의 감시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회원 중 신백우·고순흠·김사용·오상근(吳祥根)·백광흠·이수영(李遂榮)·김명식(金明植)·김두희(金枓熙) 등은 1917년의 러시아혁명에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와 노동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이들은 대동청년단의 다른 회원들과 함께 17회에 걸친 토의회를 가진 뒤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의 전신인 조선노동문제연구회를 1919년 7월에 조직하였다. 대동청년단은 1945년까지 이어졌는데, 회원들은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의 중추세력으로 활약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  (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조선노동공제회의 창립과 노동운동」 ( 신용하 ,『한국사회사연구회논문집』 3,문학과지성사,198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강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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