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에 유학하여 오랫동안 체재하면서 당나라의 이름난 문인들과 널리 교유한 것으로 보아 문인으로서의 그의 능력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였던 것 같다. 특히, 최치원(崔致遠)과도 교유한 바 있다.
함통(咸通)연간(860∼873)의 소위 방림십철(芳林十哲)의 한 사람으로 지목된 장교(張喬)와는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박구가 귀국할 당시 장교는 그의 귀국을 애석해 하며 ‘송기대조박구귀신라(送碁待詔朴球歸新羅)’라는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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