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수문장, 훈련원주부, 만호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태인(泰仁: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
주요 관직
수문장|훈련원주부|만호
관련 사건
정묘호란|병자호란
정의
조선후기 수문장, 훈련원주부, 만호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태인(泰仁). 사촌형이 첨절제사 백광종(白光宗)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용략이 남보다 뒤어나고 무예가 탁월하여 17세에 무과에 급제,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의주 용골성(龍骨城)에서 후금군을 무찔러 수문장(守門將)이 되었다.

1630년 단도(椴島)의 유흥치(劉興治)가 의주를 침공할 때 종형 백광종(白光宗)과 함께 이를 섬멸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 때에도 공을 세워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가 되었다. 1639년 초선장사(抄選壯士)로 사신을 따라 심양(瀋陽)에 가서 사재를 털어 포로로 잡혀간 남녀 수천인을 속환(贖還: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되돌아오게 함)시켰다. 그 뒤 만호(萬戶)를 거쳐 첨절제사를 지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의주읍지(義州邑誌)』
집필자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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