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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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국가유산
통일신라의 승려 조구가 창건한, 충청남도 금산군 소재의 사찰.
유적/건물
건립 시기
통일신라
소재지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30(석동리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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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보석사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진락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조구가 창건한 사찰로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고, 1912년부터는 31본산으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진영각에 휴정·유정·영규의 영정을 모셨으나 도난 당하였다. 의병승장비는 공주의 청련암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이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문수보살의 좌상은 조선시대 불상 중에 극치라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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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통일신라의 승려 조구가 창건한, 충청남도 금산군 소재의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885년(헌강왕 11)에 조구(祖丘)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그 뒤에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願堂)으로 삼았으며, 1912년부터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조사전 · 지장전 · 산신각 · 의선각 · 적묵당 ·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199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 문수보살 · 보현보살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안치하였다.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2011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삼존불은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영각은 휴정(休靜) · 유정(惟政) · 영규(靈圭)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나 최근에 영정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이 절의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는 공주의 청련암(靑蓮庵)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로서, 1839년 5월에 금산 군수가 절 입구에 세운 것이다. 영규가 순국한 내용을 적은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서 자획이 뭉개지고 땅에 묻혔던 것을 1945년 정요신(鄭堯臣)이 찾아서 다시 세웠으며, 높이는 약 4m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둘레 11m의 큰 은행나무가 있어 199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창건주 조구가 제자 5인과 더불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하며,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이능화, 『한국불교통사(韓國佛敎通史)』(신문관, 1918)
집필자
양혜원(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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