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小西行長) 휘하의 1군(軍) 1만 8,700여명의 일본군은 400여척의 병선으로 신시(申時 : 오후 5시경)에 부산포에 침입하였다.
그 때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 정발은 전선 3척을 이끌고 포구를 나섰으나 적선은 이미 절영도(絶影島) 내외양에 들어와 있었다.
정발은 일진일퇴하면서 진성(鎭城)으로 들어와 동문루(東門樓) 앞에서 급히 군민을 소집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적장 소 요시토시[宗義智]는 약간의 병사를 거느리고 상륙하여 성의 동정을 살피기도 하였으나 이 날 적군은 상륙하지 않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적군은 우암(牛巖)쪽에서 상륙하여 성으로 향하고 세 방면에서 성을 공격하였다. 적의 조총수(鳥銃手)들은 서문 밖 높다란 곳에 올라가서 성안을 향하여 일제히 발포하여 천지를 진동하게 하면서 성벽을 넘어 종횡으로 만행을 저질렀다. 성안의 남녀노소가 모두 분전하였으나 첨사 이하 차례로 전사하고 성은 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