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北學議)』에서 ‘북학’이란 『맹자(孟子)』에 나온 말로, 중국을 선진 문명국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자 박제가(朴齊家)는 청년 시절부터 시인으로서도 유명해 연경(燕京)에까지 명성을 날렸다. 그는 채제공(蔡濟恭)의 호의적인 배려로 연경에 갈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그 동안 연구해 왔던 것을 실제로 관찰, 비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연구한 것과 3개월의 청나라 여행 및 1개월 여의 연경 시찰에서 직접 본 경험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더해 집필하였는데 당시 쓴 북학론이 바로 이 책이다.
보통 ‘북학의’라 하면 북학파를 상기하게 되는데, 북학파의 북학 사상을 가장 철저하고도 과단성 있게 대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학파라는 이름도 『북학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학의』는 2권 1책으로 된 사본이다. 이 책은 내외편 각 1권으로 구성되었다. 내편은 거(車)·선(船)·성(城)·벽(枓)·와(瓦)·옹(甕)·단(簞)·궁실(宮室)·창호(窓戶)·계체(階恂)·도로(道路)·교량(橋梁)·축목(畜牧)·우(牛)·마(馬)·여(驢)·안(鞍)·조(槽)·시정(市井)·상고(商賈)·은(銀)·전(錢)·철(鐵)·재목(材木)·여복(女服)·장희(場戱)·한어(漢語)·역(譯)·약(藥)·장(醬)·인(印)·전(氈)·당보(塘報)·지(紙)·궁(弓)·총시(銃矢)·척(尺)·문방지구(文房之具)·고동서화(古董書怜) 등 30항목으로 되어 있다. 주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혁론을 제시해 현실의 문화와 경제 생활 전반을 개선하려 하였다.
외편은 전(田)·분(糞)·상과(桑菓)·농잠 총론(農蠶總論)·과거론(科擧論)·북학변(北學辨)·관론(官論)·녹제(祿制)·재부론(財賦論)·통강남절강상박의(通江南浙江商舶議)·병론(兵論)·장론(葬論)·존주론(尊周論)·오행골진지의(五行汨陳之義)·번지허행(樊遲許行)·기천영명본어역농(祈天永命本於力農)·재부론(財賦論) 등 17항목의 논설을 개진하였다. 상공업과 농경 생활에 관한 기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기본 골격은 중국을 본받아서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서 놀고 먹는 유식 양반의 처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또한 상공업의 발전과 관련해 농경 기술·농업경영을 개선함으로써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민부(民富)를 증대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 풍조로 보아 청나라인 중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과단성 있고 혁명적인 사상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는 정치적인 대외정책으로 말미암아 청나라에 사대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멸시하는 풍조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시대 풍조에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받게 될 박해를 무릅쓰고 구국·구빈(救貧)의 길이 오직 북학밖에 없음을 역설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소신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이다. 그는 실학자들마저도 천편일률적이었던 금사론(禁奢論)을 배격하고 용사론(容奢論)을 주장하였다. 즉, 민중의 수요억제·절검이 경제 안정에 필요하다는 통념을 물리치고 생산 확충에 따른 충분한 공급이 유통 질서를 원활하게 한다는 경제관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공급 확충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선진 문물의 습득과 보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북학의』의 내외편 가운데 3분의 1 정도의 내용을 간추려 첨삭을 가하고 순서를 바꾸어 올린 『진소본북학의(進疏本北學議)』가 있다. 이 책은 그가 1798년(정조 22)에 경기도 영평 현령으로 있을 때 농서(農書)를 구하는 임금의 요청에 따라 응지 상소(應旨上疏)의 형식으로 바친 것이다. 따라서 그 논지는 『북학의』 내외편과 거의 같으나 우선 분량이 현격히 다르므로 두 종류를 엄격하게 분간해야 할 것이다.
『북학의』는 광복 전에는 간행되지 않다가 광복 직후에 『진소본북학의』의 번역문만이 출판되었다. 그 뒤 1962년에 이르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그의 문집과 함께 『북학의』가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고, 1971년에는 『북학의』의 내외편이 을유문고본으로 전문이 번역되었다.
박제가는 시대착오적인 북벌론을 무릅쓰고 북학론을 외쳤으며, 과학 기술 교육을 위해서는 서양의 학문도 배워야 할 것임을 주장하였다. 그러한 사상이 담긴 『북학의』는 구국의 명론인 동시에 당시 우리나라 도시와 농촌의 의식주에 관한 귀중하고 솔직한 기록으로서 중요하다. 이는 그 시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만년의 정약용(丁若鏞)의 논설과 더불어 전근대에 있어서 가장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이 담긴 불후의 고전적 명저이다. 나아가 우리가 계승, 선양해야 할 얼이 서려 있는 고귀한 사상적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