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8년(인조 26) 박순의 자손들이 편집·간행했고, 1857년(철종 8) 중간되었다. 권두에 김상헌(金尙憲)의 서문과 권말에 정홍명(鄭弘溟)·홍직필(洪直弼)·조두순(趙斗淳)·심경택(沈敬澤) 등의 발문이 있다.
7권 3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3에 시 583수, 권4에 계(啓) 2편, 서(書) 2편, 잡저 4편, 비명 7편, 권5∼7에 부록으로 행장 1편, 시장(諡狀) 1편, 신도비명 1편, 교서 1편, 사제문 1편, 봉안문 4편, 축문 2편, 소(疏) 2편, 제문 1편, 찬(贊) 1편, 묘문(廟文) 1편, 서후(書後) 1편, 발(跋) 1편, 시·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당시풍(唐詩風)을 따랐다. 시의 양도 상당수에 달하고, 형식에서도 오언고시·칠언고시·칠언절구·오언절구·오언배율 등 다양하다. 「쌍송(雙松)」·「소상야우(瀟湘夜雨)」·「춘일만흥(春日漫興)」 등의 감흥시를 비롯해 이이(李珥)·이황(李滉)·정철(鄭澈) 등 명유(名儒) 및 승려들과 주고받은 시가 많으며, 조식(曺植)·기대승(奇大升) 등에 대한 만시(挽詩)도 있다.
계(啓)의 「논윤원형계(論尹元衡啓)」는 윤원형 거세의 결정적 역할을 한 계문이다. 왕실과의 척분을 기화로 전권을 휘두른 윤원형의 비리를 파헤치고 윤원형의 축출을 건의하고 있다. 서(書)의 「답이이율곡서(答李珥栗谷書)」는 이이와 이기론(理氣論)을 논의한 것이다. 「퇴계선생묘지명(退溪先生墓誌銘)」은 이황의 일대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부록의 교서는 저자의 좌의정 사직소(辭職疏)에 대한 선조의 불윤비답(不允批答)으로 이이가 찬(撰)한 것이다. 사제문은 1713년(숙종 39) 저자를 봉안한 옥병서원(玉屛書院) 사액시 숙종이 내린 것이다.
이 밖에도 『국조보감(國朝寶鑑)』·『홍재전서(弘齋全書)』·『조야기문(朝野記聞)』 등의 기록과 이황·이이·백인걸(白仁傑) 등 제가(諸家)의 서간문·상소문 등의 기록 가운데서 저자에 관한 사항을 추려서 모은 『제가기록』이 있다.
또한 구희직(歐希稷)·성헌(成憲)·왕새(王璽)·황홍헌(黃洪憲) 등의 명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당시 원접사(遠接使)로 있던 저자에게 지어 준 작별시도 있다. 이 시들은 한결같이 저자의 문장과 인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