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인(洪重寅, 1677~1752)은 남인 학자로 자가 양경(亮卿), 호가 화은(花隱), 본관이 풍산(豐山,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으로, 만퇴(晩退) 홍만조(洪萬朝)의 셋째 아들이다. 1713년 성균관진사가 되었고, 1721년 선릉참봉에 제수되어 관로에 진출한 이후 진안현감 · 선혜청낭관 · 원주목사(原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741년에는 한산군수(韓山郡守)에 부임하였다가 천안군에 우거하였다. 1746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 · 돈영부도정(敦寧府都正)에 제수되었다. 이익이 지은 묘갈명에 따르면 그는 만년에 서사(書史)를 좋아하여 찬집(纂輯)한 글이 많았는데 『아주록(鵝洲錄)』 30권, 『동방시화(東方詩話)』 7권이 있다. 『동방시화』가 곧 『동국시화휘성(東國詩話彙成)』이다.
『동국시화휘성』은 23권 7책의 필사본이다.
『동국시화휘성』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 경위와 필사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수록 인물의 생몰년을 참고하면 편찬 시기를 숙종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동국시화휘성』의 편자는 홍중인이다. 홍중인의 묘갈명에 “『동국시화』 7권이 있다”라고 하였고, 홍중징(洪重徵, 1682~1761)이 1734년에 지은 「시화휘성서(詩話彙成序)」에 “우리집 셋째 형 화은공(花隱公)이 한가로이 거처하며 업무가 없던 시기에 우리나라 패관(稗官) 기록들을 총괄하고는 묶어서 한 부의 시화를 완성하였다”라고 하여 홍중인이 편자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이 서문이 『동국시화휘성』에 수록되지 않고 『시화휘성』에 수록되었다는 것은 『동국시화휘성』이 1734년 이전에 필사 · 정리되어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시화휘성』으로 다시 수정 · 보완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국시화휘성』의 이본으로 『시화휘성』과 『시화휘편』이 있다. 『시화휘성』은 서문을 지은 홍중징의 주도로 전(全) 5책으로 정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제3책이 결락되어 제4책만 소장되어 있다. 『시화휘편』은 심노숭이 1816~1817년에 논산 현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홍중인의 손자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그때 그 집에 보관되어 있던 『시화휘성』을 열람하고 옮겨 적은 것이다. 현재 『대동패림(大東稗林)』 내에 낙질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시화휘성』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본은 편차 및 내용에서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권차에 약간의 착오가 있는데, 권6~10은 고려시대인데 조선시대가 다시 권9로 시작되고 있어 권차 순서가 중복되어 있다. 또 조선시대의 권10이 없고 권11이 있는데, 권차 번호를 오기(誤記)한 것으로 보인다. 중복된 권차와 누락된 권차를 감안하면 23권 7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본은 지질 · 서체 등으로 보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뒤에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동국시화휘성』은 본서는 23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과 발문이 없다.
각 권에 수록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1책은 권15로, 권1은 단군조선 편의 단군(檀君)과 기자조선 편의 기자(箕子) · 여옥(麗玉) 등 3인, 권2는 신라 편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 · 유리왕(儒理王) · 박제상(朴提上) · 백결선생(百結先生) · 설총(薛聰) · 최치원(崔致遠) · 김생(金生) 등 24인, 권3은 고구려 · 백제 편으로 동명왕 · 을지문덕(乙支文德) · 의자왕 등 4인, 권45는 고려 편으로 최승로(崔承老) · 최충(崔冲) · 정지상(鄭知常) · 임춘(林椿) · 이규보(李奎報) 등 41명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2책은 권6~10으로, 고려 편에 최자(崔滋) · 이제현(李齊賢) · 원천석(元天錫) · 선탄(禪坦) · 혜문(惠文) · 동인홍(動人紅) 등과 고려 승석(僧釋) · 창류(娼流) · 보유문(補遺門) 편에 57명이 수록되어 있다.
3책은 권9 조선 편으로, 태조 ·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近) · 조준(趙浚) · 성석린(成石璘) · 성삼문(成三問) 등 32인이 수록되어 있다. 권10은 결락되어 있다.
4책은 권11~12로 유호인(兪好仁) · 조위(曹偉) · 김일손(金馹孫) · 정희량(鄭希良) · 박은(朴誾) · 김정(金淨) · 임억령(林億齡) · 서경덕(徐敬德) · 조욱(趙昱) · 조식(曺植) · 성운(成運) · 상진(尙震) · 이준경(李浚慶) · 홍섬(洪暹) · 이황(李滉) 등 53인이 수록되어 있다.
5책은 권13~14로 임형수(林亨秀) · 홍인우(洪仁祐) · 김인후(金麟厚) · 조사수(趙士秀) · 노수신(盧守愼) · 유희춘(柳希春) · 허봉(許篈) · 이덕형(李德馨) · 이항복(李恒福) · 최립(崔岦) · 임제(林悌) · 차천로(車天輅) 등 46인이 수록되어 있다.
6책은 권15~16으로 최경창(崔慶昌) · 강항(姜沆) · 신흠(申欽) · 이정귀(李廷龜) · 이호민(李好閔) · 양경우(梁慶遇) · 이민구(李敏求) · 김치(金緻) · 허균(許筠) · 이명한(李明漢) · 윤선도(尹善道) · 허목(許穆) · 홍만종(洪萬宗) 등 50인이 수록되어 있다.
7책은 권17~22로 남구만(南九萬) · 이서우(李瑞雨) · 유혁연(柳赫然) · 이현석(李玄錫) · 오도일(吳道一) · 이현조(李玄祚) · 채팽윤(蔡彭胤) 등 11인과 종실(宗室) 4인, 승류(僧類) 6인, 권20에 규수(閨秀) 4인, 권21에 창류 2인 등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 방식은 각 인명 아래 그 약력을 간단히 기술한 후, 그 인물과 관련한 시화를 조목조목 한데 모아 놓았고‚ 그 뒤에 친구의 증시(贈詩)나 만시(輓詩) 등을 첨부하였다. 다른 이의 책에서 인용한 것 외에도 필자가 들었던 소문이나 이야기를 참고한 기록들도 간혹 보태져 있다. 본서에 인용된 서목(書目)은 정사(正史) · 야사(野史) · 문집류(文集類)를 제외하고, 시화류(詩話類)만 해도 약 40종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다. 특히 행적이 뚜렷한 작가의 경우, 그의 문집에서 직접 수록한 것도 많다.
서술 내용을 보면 단군의 경우, 앞에 단군의 사적을 싣고 뒤에 권근 · 남효온(南孝溫)이 지은 찬시를 소개하고 있다. 권근이 지은 시는 명나라 태조가 제목을 내려 준 데에 응답한 것으로, 단군의 건국신화를 담고 있다. 명나라 태조가 권근에게 학문이 충실한 수재(秀才)라 했을 만큼 칭찬을 받은 시이다. 고조선 편의 기자 · 여옥과, 신라 편의 유리왕 · 박제상 등은 모두 전해지는 설화나 후대인의 찬시를 수록하고 있다. 여옥을 고구려 편에 수록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유리왕 조에는 「회소곡(會蘇曲)」과 「도솔가(兜率歌)」 등을 소개하면서, 김종직(金宗直)이 지은 시를 함께 수록하였다.
일반적으로 무명씨라 하고 작자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조선 편에는 이러한 무명씨가 69인이나 된다.
이 책은 18세기 많은 잡기류(雜記類)들 중에서 인물을 중심에 두고 서술 체계를 완성시킨 대표적 저작으로 시화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승려(고려 승석 편, 조선 승류 편) · 규수 · 창류 · 종실 등 여러 부류에 속하는 인물들을 서술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작자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의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 중요한 이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시화휘성(詩話彙成)』(고3440-6) 필사본 4책(영본(零本))과 심노숭(沈魯崇, 1762~1832)이 편찬한 야사 총서(野史 叢書)인 『대동패림(大東稗林)』에 수록된 『시화휘편(詩話彙編)』이 있다. 그리고 『동국시화(東國詩話)』라는 이름의 축약본 몇 종이 연세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