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병(李義秉, 1751∼1814)은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상준(李商濬). 자는 재심(在心) 또는 사형(士衡), 호는 주암(疇巖) 또는 목석(木石)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최중(李最中)이다.
15세에 신소심(申素心)에게 수학하여 선생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삼가고 신중함을 배웠다.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782년(정조 6) 아버지가 역모에 무고되어 전라도 추자도로 유배되자 노복으로 위장하여 수행할 만큼 효심이 돈독하였다. 유배 중인 아버지의 안부를 살피기 위하여 행상차림으로 해변까지 가서 통곡하였으며, 돌아와 향리에 은거, 매일밤 산에 올라 남쪽을 향하여 재배하며 울면서 주1을 빌었다. 1784년 가을에 불길한 꿈을 꾸고 즉시 길을 떠났다. 전라도영암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읍졸에게 간청하여 추자도로 건너가 혼절하고 아버지를 향리로 주2.
1796년 아버지의 억울함이 신원되고, 1801년(순조 1) 복관된 뒤 두 번이나 관직의 부름을 받고도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은둔하였다.
5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으며, 1928년에 간행할 목적으로 저자의 글을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과 발문은 없다.
책1은 시 25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이이(李珥)· 조헌(趙憲)· 성수침(成守琛)· 김창협(金昌協)· 임성주(任聖周) 등의 문집이나 저술을 읽고 느낀 점을 시로 읊은 것, 한거하면서 계절이나 자연의 변화를 보고 느낀 감회를 표현한 것과 구경대(龜景臺)·삼부연(三釜淵)·소양정·선죽교·만월대 등 명승지나 서원 등을 유람하며 지은 것이 있다. 그밖에 이신모(李莘模)·권구(權構)· 정철(鄭澈) 등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과 박양신(朴良藎)· 송시열(宋時烈)·이이 등 명현의 시를 화운(和韻)한 것도 있다.
책2는 묘표(墓表) 2편, 묘지(墓誌) 17편, 행장(行狀) 8편 등이다.
책3은 제문(祭文) 39편, 고축문 9편, 잡저(雜著) 14편 등이다. 잡저에는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현의 말 가운데 절실한 것을 발췌해 편찬한 「사사편서(事斯篇書)」에 붙인 글, 제례(祭禮)의 원칙과 시제(時祭)·천신(薦新) 등을 행할 때 지켜야 할 사항과 물품 등을 적어 놓은 「제례정식(祭禮定式)」, 유배지에서 죽은 아버지의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처세관을 문답 형식으로 밝힌 글 등이 있다.
책4는 서(書) 71편 등이다. 서는 친족에게 보낸 것이 많으며, 대부분 매우 간략한 것들로 예설에 관한 단편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책5는 유사 4편, 애사(哀詞) 1편, 기사(記事) 4편, 잡저 3편 등이 실려 있다. 기사는 은거하면서 보고 들은, 성종대의 영의정 장순손(張順孫)의 후손인 감찰 장이량(張爾良), 주3의 상인, 과천에 산다는 효자 등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들이다.
5책의 잡저에는 귀머거리와 장님의 대화 형식을 빌려 당시의 세상살이를 비유한 글인 「농고설(聾瞽說)」, 아버지가 지은 글을 모아 목록을 만든 뒤 붙인 발, 타인의 죄에 연루된 자로서의 자신의 처신에서 주의할 점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자경(自警)」 등이 있다.
목석유고(木石遺槁)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고, 원문 이미지도 제공하고 있다.
저자의 행장은 『매산집』 권47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