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곡유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혁의 시·소(疏)·계(啓)·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4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누구의 주도로 수집, 편집되었는지, 필사경위 등을 알 수 없다. 『매곡유록』은 대부분 시(詩)와 관직 생활하면서 올린 상소와 계사, 서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강화유수로 부임해서 강화외성을 쌓을 때 지은 「강도축성의」와 「강도성역절목」이 주목할 만하다.
김시혁(金始焃, 1676~1750)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회경(晦卿), 호는 매곡(梅谷),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김선여(金善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득원(金得元)이고, 아버지는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 김홍주(金弘柱)이며, 어머니는 주서(注書) 남궁배(南宮培)의 딸이다. 아들이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1710년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를 시작으로 정언(正言)·병조좌랑·지평·충청도사·고산찰방(高山察訪) 등을 거쳐, 영광군수(靈光郡守)로 나가서 큰 치적을 올렸다. 특히, 1720년(숙종 46) 양전(量田) 당시 부세(賦稅) 수입을 배로 올려 국가에 이익이 되게 하였다. 이후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헌납(獻納)·사간·집의(執義)·필선(弼善)·보덕(輔德)·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이때 호서지방의 안찰사(按察使)로 나가 사정을 살핀 뒤 군역(軍役)의 변통을 주장하였다. 그 뒤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4년(경종 4)에 수원부사로 나갔다가 영조 즉위 후 물러났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丁未換局) 이후 다시 기용되어 황해도관찰사, 호조참의, 대사간·동부승지·춘천부사를 지냈다. 1741년 강화유수로 부임해 청나라에서 견문한 벽돌 굽는 법을 도입해 강화외성(江華外城)을 쌓는 데 공을 세웠다. 1744년에는 대사헌이 되었고, 1745년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그 뒤에도 공조판서·대사헌·의정부좌참찬 등과 숭정대부(崇政大夫)로 품계가 올라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까지 제수되었다.
불분권 4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한 필사 연대는 알 수 없다.
불분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은 시(詩) 270수, 만(挽) 30수이다.
2책은 소(疏) 67편, 계(啓) 14편, 의(議) 1편, 피초(避草) 6편, 피사(避辭) 1편 등이다. 소는 사직소(辭職疏)가 대부분이다. 계에는 전남병사 이상복(李尙馥), 함경감사 이선보(李善溥), 경상감사 유명홍(兪命弘), 대사간 이조(李肇), 훈련대장 이기하(李基夏) 등의 죄를 논한 것과 자의(諮議) 이간(李柬), 사성(司成) 한영휘(韓永徽) 등의 부적격을 논계한 것 등이 있다.
「피초」에는 훈련대장 이기하를 논계한 것과 방목(榜目) 오서(誤書)사건으로 인해 사직을 청한 것 등이 있다. 「연명계사(聯名啓辭)」는 1716년(숙종 42) 대사간 이세최(李世最), 사간 이정제(李廷濟), 지평(持平) 홍우행(洪愚行)과 연명해 올린 것으로 김창집(金昌集)의 전후 차자(箚子)가 모순된 점을 지적하였다.
3책은 연행시별단(燕行時別單) 1편, 호서안렴시서계(湖西按廉時書啓) 1편, 해서양역의(海西良役議) 1편, 장문(狀文) 5편, 주문(奏文) 1편 등이다. 「연행시별단」은 1723년(경종 3) 11월 27일에서 다음해 3월 15일까지 연경(燕京: 현, 중국 베이징시)에 다녀온 기록으로 연로(沿路)에서 보고들은 것과 세시풍속·노정·행역 등을 기록한 것이다. 「호남안렴시서계(湖南按廉時書啓)」는 호남 안렴사로 내려가서 직접 목도한 민폐와 군기(軍器)·집탈(執頉)에 관한 것을 서계한 것이다. 백골징포(白骨徵布)와 인징(鄰徵)을 최대의 민폐로 지적하고 양역법(良役法)에 대하여 논하였다.
4책은 관직제의(官職除議) 1편, 강도축성의(江都築城議) 1편, 강도성역절목(江都城役節目) 1편 등이다. 「강도축성의」와 「강도성역절목」은 강화유수 재임시절에 중국에서 전해온 번벽법(燔甓法)을 이용해 강화도 외성을 개축한 기록과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인원 등이 기록되었다. 「강도문답(江都問答)」에서는 병란이 생길 경우 적병을 방어할 수 있는 곳으로 한성과 강화도·남한산성·북한산성 등 네 곳을 들고, 네 곳의 장단점을 문답식으로 비교해 이 중에서 천험의 요새지로는 강화도가 제일임을 강조하였다.
본서에는 저자가 강화유수로 부임하였을 때 중국의 축성법을 이용하여 강화도 외성(外城)을 쌓은 기록과 양역변통의 글이 실려 있어 축성과 양역의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고려대학교 교내에서는 원문 이미지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