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유고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환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1901년
간행 시기
1901년
저자
정환주(鄭煥周)
편자
정환정
권책수
6권 2책
권수제
미산유고(薇山遺稿)
판본
목판본
표제
미산유고(국립중앙도서관), 미산집(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미산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환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정환주의 동생 정환정 등이 6권 2책으로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정환주는 임헌회와 송내희의 문인으로 임헌회, 송내희에게 올린 편지와 어록이 있으며, 우암이 주자행장에서 뽑아 자손을 교육하였던 것을 본보기로 정여창의 행장에서 뽑아 집안의 소학으로 만들었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환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정환주(鄭煥周, 1833∼1899)는 조선 말기의 학자로 본관은 하남(河南), 자는 명신(命新), 호는 미산(微山)이다. 아버지는 정동우(鄭東祐)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호일(李浩一)의 딸이다. 임헌회(任憲晦)의 문인이다.

일찍이 정훈(庭訓)으로 과거공부에 열중하였으나 뜻을 바꾸어 이이(李珥)「격몽요결(擊蒙要訣)」을 본받아 『가학연의(家學演義)』를 편찬하고 수신의 지침서로 활용하였으며, 1860년(철종 11) 부친의 명으로 화림사(花林寺)· 법화사(法華寺)를 찾아 경학과 예학에 정진하였다.

1862년 지리산 백무동(白霧洞)에 들어가 초가집을 짓고, 위기(爲己)의 학문에 침잠하였는데 이때 군수 한치조(韓致肇)가 흥학(興學)의 책임을 부탁하자 본격적으로 후학 지도에 정열을 쏟았다. 1868년(고종 5) 장성현으로 기정진(奇正鎭)을 찾아 칠정(七情)에 대해 논변하였으며, 1872년에는 임헌회를 찾아가 사제 간의 의리를 맺었다.

1879년 부친과 모친상을 당하여 6년간을 지극한 효성으로 마쳤으니 정환주가 왕래했던 성묘(省墓)길을 효자로(孝子路)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정환주는 세상에 뜻을 잃고 숨어 살면서 백이(伯夷)와 도연명(陶淵明)의 지취를 누렸으며, 죽을 순간까지 찾아오는 빈객들과 학문을 토론하였다.

정환주는 『소학(小學)』· 『중용(中庸)』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며 당시 유행하던 이기설(理氣說)· 사칠논변(四七論辨)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정환주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권기덕(權基德)·강민영(姜敏永) 등이 있다.

서지사항

6권 2책. 목판본.

편찬 및 간행경위

1901년 정환주의 동생 정환정(鄭煥廷)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구성과 내용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 목차가 있으며 서문과 발문이 없다.

권1은 시 84수로 「근차화양구곡시(謹次華陽九曲詩)」, 「근차수승대화퇴계선생운(謹次搜勝臺華退溪先生韻)」 등 차운시(次韻詩)가 많고 민재남(閔在南) 등 6인에 대한 만사(輓詞)와 명승과 고적을 읊은 것도 있다. 시의(詩意)는 소박해 신선의 무위의 세계를 그렸다. 시상은 고요해 풍진이 물들지 않은 청정한 곳으로 달렸다.

권2는 서(書) 59편으로 임헌회, 기정진에 올린 편지와 전우(田愚), 한치조(韓致肇), 하재구(河在九) 등에게 보낸 것으로 이기(理氣)·중용·성정·천명 등 학문에 관한 문제를 분석하였다. 예설에 대해서는 『가례』를 기준으로 상세한 부분까지 언급하고 있다.

권3은 잡저(雜著) 7편이다. 「여서후육조문(與徐侯六條文)」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있자 군수 서호순(徐浩淳)에게 정치하는 대체(大體) 6조목을 진언한 것이다. 첫째 일을 처리하는 근본으로 마음을 바르게 할 것, 둘째 민심을 안정시키는 근본으로 기강을 세우고 명분을 바르게 할 것, 셋째 인재를 얻는 근본으로 학교를 일으킬 것, 넷째 족식강병(足食强兵)의 근본으로 절의를 숭상하고 염치를 힘쓰게 할 것, 다섯째 임시응변의 요체로 무기를 정비하고 방비를 굳게 할 것, 여섯째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려면 공도(公道)를 넓혀야 하고 여론을 수렴해야 함을 주장해 그의 우국정신을 담고 있다.

권4는 서(序) 8편, 기(記) 13편, 제발(題跋) 5편, 명(銘) 3편, 잠(箴) 3편, 고축(告祝) 1편, 행장(行狀) 2편, 행록 1편, 전(傳) 1편, 어록 2편으로 되어 있다. 서는 제천으로 돌아가는 김현옥(金顯玉)과 정량채(鄭亮采), 양도일(梁道一)에게 송서(送序)가 있다. 어록은 임헌회의 어록과 1861년(철종 12)에 동생과 함께 송내희(宋來熙)를 배알하고 묻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권5는 「가학연의」이다. 이는 그의 선조 정여창(鄭汝昌)의 행장을 분석하여 교훈이 되는 것을 뽑아서 집안의 소학을 만든 것이다. 입지장(立志章)·진학장(進學章)·심학장(心學章)·거가장(居家章) 등 모두 14장으로 엮어져 있다.

권6은 대명충의록(大明忠義錄)과 부록으로 가장(家狀)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명충의록은 1872년 임헌회를 찾아 사제 간의 의리를 맺고 사도(思道)란 호를 받고 돌아와 편찬한 것으로 명나라 혜제(惠帝)가 손위(遜位)한 때부터 의종(毅宗)이 순사(殉死)하기까지 45인의 인물들의 충의를 기록하고, 칠언절구시를 붙여 놓은 것이다. 가장은 동생 정환정이 1901년(광무 5)에 지은 것이다.

의의와 평가

정환주는 함양 출신 학자로 19세기 초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의 의식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현황
참고문헌

논문

이상주, 「慶南地域 士林들의 華陽九曲詩에 대한 考察」 (『동양한문학연구』 45, 동양한문학회, 2016)
집필자
이연숙(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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