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내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성리학에 정통한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
이칭
자칠(子七)
금곡(錦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1년(정조 15)
사망 연도
1867년(고종 4)
본관
은진
출생지
충청남도 공주
주요 저서
성리논변|금곡선생문집
주요 관직
성균관 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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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송래희는 19세기 중엽 헌종과 철종 대의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이다. 효종 때 산림이었던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이며, 1815년 진사 초시에 입격하였다. 1835년 선공감 가감역에 제수된 이후, 뛰어난 학덕으로 성균관 좨주, 대사헌 등에 제수되었다. 정통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여 독서를 통해서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예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의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긍정하였다. 저서로는 『성리논변』과 『금곡선생문집』이 전한다.

정의
조선 후기 성리학에 정통한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칠(子七), 호는 금곡(錦谷)이다. 효종산림이었던 문정공(文正公)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당진현감을 지낸 송계정(宋啓楨), 어머니 한산이씨는 이홍재(李洪載)의 딸이다. 1791년(정조15)에 외가인 공주에서 태어났다. 5세에 어머니가, 28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부인 파평윤씨는 윤응대(尹應大)의 딸이다. 송각로(宋恪老) · 송익로(宋益老) · 송약로(宋約老)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주요 활동

1815년(순조 15) 진사 초시(初試)에 입격하였다. 1835년(헌종 1)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을 지냈으며, 사헌부 감찰, 황간현감, 평안도 도사를 거쳐 1838년(헌종 4)에 경연관에 제수되었다.

조정에서 송내희의 학덕을 인정하여 1853년(철종 4)에 성균관 좨주(祭酒)로 천거되었다. 1857년(철종 9) 이후로는 여러 차례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며, 1865년 공조판서에 올랐다. 1867년(고종 4) 금산 첨모헌(瞻慕軒)에서 타계하였다.

학문과 사상

저서로 『독서관견(讀書管見)』 3편과 , 『 성리논변(性理論辨)』 5책 10권, 『예절람요(禮節覽要)』 4책, 『금곡선생문집(錦谷先生文集)』 10책 18권이 있다. 정통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여 도와 이(理)를 밝히는 방법으로 독서와 예를 중시하였다.

『성리논변』은 성리학의 기본 개념과 논변을 기술한 책이다. 제1권은 유학의 경전, 제2권은 송대의 성리학자인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 소옹(邵雍), 주희(朱熹)의 글에서 뽑은 것이다. 제3권부터 제10권까지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이기(理氣) 논쟁, 조선 후기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논쟁을 망라한다.

송내희는 이 논쟁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설을 긍정하였다. 인물성동이론 논쟁도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예를 중시하여 『예절람요(禮節覽要)』 4책을 남겼다. 『금곡선생문집(錦谷先生文集)』에서도 4권에 달하는 「서(書)」가 예(禮)에 대해 문답한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잡저인 「분황의(焚黃儀)」, 「잡록(雜錄)」에서도 예에 관해 논의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금곡선생문집(錦谷先生文集)』
『철종실록(哲宗實錄)』
『헌종실록(憲宗實錄)』

논문

정성희, 「조선말 성리학자의 성리학적 개념에 대한 인식: 송내희의 『성리논변』 1, 2권을 중심으로」(『동양철학연구』 35, 동양철학연구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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