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판본. 권수제 ; 만주선생문집 판심제 ; 만주집
정창주의 둘째 아들 정원상(鄭元詳, 16621717)이 집안에서 보관하던 초고(草稿)를 모으고 편집하여, 강현(姜鋧, 16501733)에게 서문을 받아 『만주집』을 간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정창주의 손자 정유(鄭維, 1691~1761)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1748년에 강현의 서문을 붙여 『만주집』을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만주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강현(姜鋧)이 1717년에 쓴 서(序)와 목록이 있다. 강현은 정창주가 교유했던 인물인 강백년(姜栢年)의 아들이다.
권1~2는 시(詩) 480수로 시의 체재〔詩體〕별로 편찬하였으며, 간혹 타인의 원운(元韻)이나 차운시(次韻詩)가 부기된 경우도 있다. 주로 신유(申濡) · 김남중(金南重) · 신득홍(申得洪) · 임선백(任善伯) · 임담(林墰) · 홍흥지(洪興祉) · 최계훈(崔繼勳) · 정석(鄭晳) · 강백년 등과 교유한 시가 많고, 화학루(化鶴樓) · 영남루(嶺南樓) · 부벽루(浮碧樓) · 백상루(百祥樓) · 몰운대(沒雲臺) 등등 저자가 근무했던 지역에 있었던 경치 좋은 곳과 그에 대한 소회를 읊은 시가 있다. 「강도회고(江都懷古)」는 병자호란 때의 비참했던 역사를 생각하며 울분을 토로 한 시이다. 「탕참(湯站)」 · 「태자하(太子河)」 등은 1642년에 저자가 서장관으로서 연경(燕京)에 갔을 때 지은 시이다. 「보의자운기춘호(步依字韻寄春湖)」는 춘호(春湖) 정석(鄭晳)과 수창하면서 지은 시로, 뒤에 정석의 차운시를 덧붙여서 적었다. 이 차운시의 주석에는 저자의 호인 ‘만주(晩洲)’가 강호로 은거하고자 하는 계획을 담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자탄생하율(元子誕生賀律)」은 1661년에 지은 것으로 훗날 숙종이 되는 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이다.
권3은 시 74제와 부(賦) 3편, 표전(表箋) 10편이다. 목대흠(睦大欽) · 조문수(曺文秀) · 채유후(蔡裕後) · 신득홍을 애도하는 만사와 인평대군(麟坪大君) · 효종(孝宗)에 대한 만사가 있다.
권4는 조제(詔制) 4편, 잠명(箴銘) 6편, 송(頌) 4편, 전문(箋文) 9편, 소장(疏章) 2편, 서문(序文) 3편, 잡설(雜說) 7편이다. 「구언응지략진시폐소(求言應旨略陳時弊疏)」는 저자가 담양 군수를 지냈던 시기에 군의 삼정(三政)이 지닌 문제점들을 아뢰면서 개혁안을 제시한 글이다. 「개건향교겸서시종지의(改建鄕校兼序始終之義)」는 향교를 이건한 후에 훗날의 군자들이 유종(有終)의 성과를 거두길 바라며 지은 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가 1648년 봄에 접위관이 되어 동래(東萊)에 가서 해운대(海雲臺) · 강선대(降仙臺) 등을 보고 지은 「유선설(遊仙說)」 등이 있다.
권말에는 1748년에 손자 정유(鄭維)가 지은 기(記)가 있다.
4권 2책으로 된 족본(足本: 빠졌거나 삭제한 부분이 없는 책) 목판본과 필사본 『만주집』이 경기도 화성시 역사박물관에 초계 정씨 기증 자료로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2권 1책의 영본(零本) 목판본이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1748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인 10대손 정재길(鄭齋吉)의 소장본을 저본으로 삼아,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속(續) 30집으로 영인하였다. 정재길의 소장본은 화성시 역사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