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보유적 제17호. 부벽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정으로 꼽힌다. 부벽루에 올라서면 청류벽 아래 유유히 흐르는 맑은 대동강물과 강 건너로 펼쳐진 들판, 멀리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 전경이 매우 아름답다. 외부에서 본 부벽루는 비단 자락을 펼쳐 놓은 듯한 맑고 푸른 물과 푸르른 녹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풍광을 보고 고려시대의 유명한 시인 김황원(金黃元)은 시심(詩心)을 일으켜, “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긴 성벽기슭으로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넓은 벌 동쪽에는 점점 산이 있네)”이라는 시를 지었지만 이 글귀 뒤로 더 이상의 시구가 떠오르지 않자 통곡하며 붓대를 꺾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벽루는 낮 경치도 좋지만 밝은 달이 뜬 밤 경치도 아름다워 “부벽완월(浮壁玩月: 부벽루의 달구경)”은 일찍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정면 5칸(14.58m), 측면 3칸(7.68m)의 장방형 평면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2익공 공포를 결구한 다음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얹었다. 기단은 낮은 편이고 그 위의 기둥 간격은 가운데 칸이 가장 넓고 그 좌우칸은 좁다. 기둥 머리에는 화려하게 초각을 한 출목 이익공의 포작을 결구하였으며 가구는 종도리와 중도리, 주심도리로 지붕틀을 구성한 5량가의 구조이다.
기둥과 초석 모두 원형인데, 초석 중 정면의 2개와 후면의 1개는 고구려 시대의 주춧돌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전금문에서 부벽루로 오르는 좌우 2곳의 돌계단도 고구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에는 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잘 다듬은 박석을 깔았으며, 천장은 보, 도리, 서까래 등이 그대로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종보 위에 놓여져 종도리를 받고 있는 대공은 화려한 조각을 한 파련대공이다.
귀공포 부분에서 외목도리장혀를 받친 첨차와 제공의 교차점 밑에 짤막하고 네모난 동자기둥 모양의 장식을 단 수법이 특이하며 그 장식적 효과도 크다. 부벽루가 아담하고 균형잡혀 보이는 것은 지붕 규모와 형태가 건물의 규모에 알맞게 갖추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