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차는 주두, 소로 및 살미와 함께 공포를 구성하는 기본 부재로 살미와 반턱맞춤에 의해 직교하여 결구되는 도리 방향의 부재이다. 주심을 비롯하여 공포가 건물 내외로 수평으로 돌출하여 형성되는 출목 선상에 사용된다. 첨차의 형태는 양쪽 끝부분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데 시대와 공포 형식에 따라 다양하다.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 둥글게 접은 교두형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주심포식 공포에 사용되는 첨차는 연화두형을 초각한 것이 일반화되었다. 다포식 공포가 보급되면서 첨차의 형태는 공포 형식에 따라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첨차는 주심(柱心)을 비롯하여 공포가 건물 내외로 수평으로 돌출하여 형성되는 출목(出目)선상에 사용된다. 조선시대 영건의궤에서 첨차의 한자표기는 ‘詹遮’ 또는 ‘添差’의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중화전영건도감의궤(中和殿營建都監儀軌)』(1901∼1904년)에서만 ‘添差’로 나타나며, 나머지 기록에서는 ‘詹遮’로 표기되어 있다.
첨차는 살미와 반턱으로 결구되는데, 받을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첨차는 단면이 장방형이며, 아래에는 살미와 반턱맞춤으로 결구하기 위한 반턱 홈이 만들어져 있다. 첨차 상면에는 소로를 얹기 위한 자리가 만들어져 있으며, 소로 얹을 자리를 제외한 부분에는 공안(栱眼)을 만든다.
공안은 소로 얹을 자리를 제외한 부분 전체를 곡선으로 오목하게 만드는 것이 고식(古式)에 속하며, 모서리만을 둥글게 따낸 경우도 있는데, 이를 공안따기라 부른다. 첨차의 형태는 특히 양쪽 끝 부분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데, 시대와 공포 형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것이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 첨차 단부는 그 끝을 직절(直切) 또는 사절(斜切)하고 그 아래를 둥글게 접은 교두형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와 주심포식 공포에 사용되는 첨차는 연화두형을 초각한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다포식 공포가 보급되면서 첨차의 형태는 공포 형식에 따라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즉 다포식 공포에 사용되는 첨차는 일부 장식적인 측면의 초각을 한 것을 제외하면 교두형이 일반적인 반면, 주심포식과 익공식 공포에서 첨차는 연화두형이 변형된 복잡한 형태의 초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심과 출목선상에 각 두 개씩의 첨차를 상하로 중첩해 사용하는 경우 첨차는 그 길이에 따라 길이가 짧은 ‘소첨(小詹)’과 긴 ‘대첨(大詹)’으로 구분된다. 한편 19세기에는 주심과 출목선상에 3개의 첨차를 중첩시켜 사용하는 경우도 등장하였는데, 이때 첨차는 길이에 따라 소첨과 대첨 외에 중첨(中詹)으로 구분된다.
첨차는 공포의 유형과 사용된 위치에 따라 주심첨차, 외목첨차, 내목첨차 등의 명칭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는 공포의 유형에 따라 다포식 공포에 사용된 주심첨차를 ‘두공(頭工)’, 주심포식 공포와 익공식에 사용된 주심첨차를 ‘행공(行工)’으로 구분해 불렀다.
첨차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이후 남북국시대 신라의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에는 외1출목선상에 첨차 한 개가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건축인 봉정사 극락전 공포는 내외 2출목 공포인데, 주심선상에 한 개의 첨차만 사용하였을 뿐 출목선상에는 첨차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고려시대 말의 수덕사 대웅전 공포는 외2출목으로 주심에 1개, 외2출목선상에 1개의 첨차가 사용되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 공포는 내외2출목 공포로 주심에 2개, 외2출목에 1개의 첨차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점차 일반화되기 시작한 다포식 공포에서 첨차는 주심을 비롯하여 출목선상에 각 2개와 가장 바깥 출목선상에 각 1개씩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