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대광명전 ( )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 정측면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 정측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사찰건물. 불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梁山 通度寺 大光明殿)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4년 06월 05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사찰건물. 불전.
개설

3구역으로 나뉜 통도사의 가람 배치 가운데 중로전의 중심 건물으로, 일부의 차이는 있지만 조선 후기의 장식화·법식화(法式化)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불전(佛殿)이다.

역사적 변천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725년(영조 1)에 축환(竺環)대사가 고쳤는데, 1756년(영조 32)에 불타버려 1758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곧 1759년에 제작된「대광명전 삼성공필후 현판(大光明殿三成功畢後懸板)」에 의하면, 1756년 10월 21일 밤 자시(子時)에 화재가 발생하여 법당 4위(位)와 승료(僧療) 4칸, 창고 10칸이 불탔다. 그 뒤 1758년 1월 7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6일에 3채의 법당을 다시 건립하고서안팎의 장식까지 마쳤고, 1759년 4월초부터 6월 26일까지는 단청을 하고서 비로자나불상의 도금도 마쳤다고 하였다. 또한 건물 안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상 뒤쪽의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보물, 1990년 지정)의 화기(畵記)에는 탱화가 1759년에 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대광명전의 기와에도 1758년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뒤 지붕 기와의 교체 등을 했을 뿐 큰 변화가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용

통도사는 상로전(上爐殿), 중로전(中爐殿), 하로전(下爐殿) 등의 3구역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대광명전은 중로전의 중심 불전으로 남향을 하고 있다. 평면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앞면과 옆면 모두 가운데칸의 주간(柱間)을 넓게 하여 중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건물 안의 뒷면에는 옆면의 기둥 배열에 맞추어 고주(高柱)4개를 세웠고, 이것에 의지하여 불단(佛壇)을 조성하였다. 3칸의 불단은 가운데 부분이 돌출하여 독특하며, 위에는 목조비로자나불이 봉안되었다. 후불벽에는 비로자나불탱화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노사나불탱화와 석가모니불탱화가 각각 걸려 있다. 이밖에도 제석탱화, 천룡탱화, 팔금강탱화 등도 걸려 있다.

받침은 앞면과 왼쪽 옆면을 긴 돌로 쌓았지만, 오른쪽 옆면과 뒷면은 막돌로 쌓아 차이를 보인다. 원래 막돌로 받침을 쌓았는데, 최근에 일부를 긴 돌로 고쳐 쌓았다. 앞면 가운데에는 긴 돌을 이용하여 소맷돌이 있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주춧돌은 모두 막돌이고, 기둥은 모두 민흘림에 가까운 둥근 기둥으로, 특히 앞면의 귓기둥이 다른 기둥에 비해 매우 굵은 편이다.

기둥의 윗부분은 창방(昌枋)으로 연결하였고, 그 위에는 공포를 받치도록 평방(平枋)을 돌려 놓았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주간이 넓은 앞면과 뒷면, 좌우 옆면의 가운데칸에는 각각 2개씩의 주간포(柱間包)를 두었고, 나머지 좌우 양쪽의 협간(夾間)과 툇간[退間]에는 모두 하나의 주간포만을 설치하였다. 주심포와 주간포는 모두 5단의 살미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단∼제3단은 아랫부분에 연꽃 봉오리를 새긴 앙서[仰舌]형이고, 제4단은 수서[垂舌]형이며, 제5단은 천계(天鷄)형이다. 다만 뒷면의 공포는 제1단∼제3단 살미를 교두(翹頭)형으로 만들었다. 건물 안으로 뻗은 살미는 모두 구름과 같은 운궁(雲宮)형으로 화려하게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고, 앞면 가운데칸 좌우 기둥의 윗부분에도 용머리를 새겨 장식성을 더하였다. 이와 함께 제1단∼제4단의 살미 끝을 연결한 선도 거의 직선으로 처리하여 조선 후기 다포식 건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구는 고주(高柱) 1개에 7량(樑)을 올렸는데,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을 설치하여 중량(重樑) 윗부분의 가구를 가렸으며,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였다. 앞면 5칸 모두에는 빗살의 창호를 설치하여 개방적으로 구성하였다. 좌우 옆면에는 앞 툇마루에 2짝의 여닫이를 설치하여 법당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고, 뒷면에는 가운데 3칸에만 2짝의 띠살 창호를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건물은 공포의 구성이 조선 후기의 장식화와 법식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내주(內柱)를 좌우 옆면의 기둥 배열에 맞추어 배치한 것은 이러한 추세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참고문헌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14)
『2014년 문화재명칭 영문 표기 용례집』(문화재청, 2014)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도경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