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삼국시대 이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도 17세기∼18세기에 해안을 따라 6개의 진(鎭)과 7개의 보(堡), 9개의 포대(砲臺)와 함께 53개 돈대가 설치되었다. 이 돈대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돈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 등의 군사 요충지에 세운 초소이다. 이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 1628∼1701)가 병조판서 김석주(金錫胄, 1634∼1684)의 명령을 받아 경상도 군위의 어영군 8천 여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건평돈대(乾坪墩臺), 망양돈대(望洋墩臺), 석각돈대(石角墩臺) 등과 함께 정포보(井浦堡, 井浦鎭)에 속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하였는데, 지금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 돈대는 강화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쪽으로는 망양돈대, 북쪽으로는 석각돈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바다 건너로는 석모도가 보인다. 특히 바다를 향해 약간 돌출한 산의 정상부에 있는데, 육지 쪽으로 산을 등진 주변의 지형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지만, 해안 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네모난 평면을 이루고 있는 다른 돈대와는 달리 평면이 원형이다.
돈대의 둘레는 91보로, 네모진 형태로 거칠게 다듬은 돌을 안팎으로 쌓았다. 성벽에는 4개의 포좌가 바다를 향해 설치되었는데, 성벽을 끊고서 좌우로 돌을 쌓아 벽을 만든 위에 긴 돌을 건너지른 모습으로, 안에는 포탄을 저장하였던 감실형의 방인 이방(耳房)이 있다. 바다 쪽에 쌓은 성벽에는 몸을 숨긴 채 총을 쏠 수 있는 총안(銃眼)을 두었다. 한편성벽 위에 쌓은 성가퀴인 치첩(雉堞)도 55개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또한 돈대 안에는 화약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일부의 석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육지 쪽으로는 돈대 안으로 들어가는 성문이 하나 설치되었다. 성문은 화강석을 잘 다듬은 커다란 무사석(武砂石)을 쌓고서,그 위에 긴 돌을 건너지르게 놓은 모습이다. 천장은 평천장이며, 문을 설치하였던 흔적인 장군목(將軍木)을 끼웠던 홈이 남아 있다.
이 돈대는 군사 요충지인 강화도에 설치된 군사시설의 하나로, 조선 숙종 때의 축성 기술을 잘 간직하고 있는 국방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