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 )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건축
유적
문화재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정무공 오정방 등 해주오씨 정무공파 관련 주택. 시도유형문화재.
정의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정무공 오정방 등 해주오씨 정무공파 관련 주택.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정무공 오정방(吳定邦, 1552∼1625)과 충정공(忠貞公)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을 비롯하여 해주오씨(海州吳氏) 정무공파의 이름난 학자와 충신, 공신들을 배출한 곳이다. 건물의 이름은 덕봉마을 해주오씨의 중시조인 오정방의 호를 딴 퇴전당(退全堂)이며, 편액은 송시열(宋時烈)이 직접 썼다고 전한다.

역사적 변천

오정방의 손자인 오핵(吳翮, 1615∼1653)의『백천당집(百千堂集)』「천덕산기(天德山記)」에 의하면, 오현경(吳賢卿)이 1510년(중종 5) 전후에 이 집을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구전에 따르면, 이보다 훨씬 뒤에 오현경의 증손인 오정방이 지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현재의 건물은 1650년(효종 1)경에 옮겨 지은 것이다.

내용

덕봉마을은 덕미, 오촌(吳村)이라고 불린다. 안성천 지류인 한천(漢川)을 중심으로 형성된 넓고 비옥한 안성들 서쪽의 해발 189m인 고성산(高城山)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고성산의 좌우에는 바리봉과 대이산이 각각 둘러싸고 있어서 제법 아늑한 편인데, 마을의 안쪽에 남남동향으로 자리한 고택은 안성들과 한천을 넘어서 멀리 왕골산과 대덕산을 바라보고 있다.

고택은 ‘ㄱ’자형의 몸채, ‘일(一)’자형의 대문채,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건물은 서로 자리한 방향을 약간씩 달리하고 있다. 몸채는 옮겨 건립하였던 1650년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대문채와 사당은 이보다 뒤에 지어졌다.

몸채는 가장 간단한 형식의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안채에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안방과 건넌방이 각각 배치되었으며, 안방 앞쪽에서 부엌이 이어져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에는 1칸의 대청과 1칸의 사랑방을 중심으로 앞면과 옆면에 툇마루가 놓여 있다. 특히 안채는 건넌방 앞의 툇마루 난간 형식을 간단하게 만들어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에 비해 사랑채는 네모기둥을 모서리를 많이 접어서 8각형에 가깝게 만들었고, 툇마루의 평난간을 ‘아(亞)’자형 살대로 구성하여 장식적인 경향을 다소나마 담았다.

특징

이 건물은 안채 건넌방 앞의 툇마루를 이용하여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시켰다. 하지만 담장을 이용하여 안채 영역을 감싸고,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문을 설치하여, 남자와 여자의 개별 생활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 영역을 적절히 구분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건물은 공간의 다양성을 살리면서 남녀의 생활 공간을 적절히 구분하였고, 전체적으로 소박하게 꾸민 편이다.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의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를 엄격히 구분하였던 17세기 사대부 가옥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한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 조선 후기 주택사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참고문헌

『경기도 지정문화재 실측조사보고서』2009년도 제1호(경기도·안성시, 2009)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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