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구룡사 보광루 ( )

원주 구룡사 보광루
원주 구룡사 보광루
건축
유적
문화재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창된 사찰건물. 불교건물. 시도유형문화재.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창된 사찰건물. 불교건물.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구룡사의 누문(樓門) 역할을 하는 건물로, 사천왕문 뒤쪽의 높은 축대에 자리하고 있다. 누하(樓下)인 1층의 계단을 오르면,바로 사역(寺域)의 중심인 대웅전 앞마당에 이른다.

역사적 변천

구룡사는 668년(문무왕 8)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신라 말에 도선(道詵)국사의 창건이라고도 전한다. 그 뒤 1706년(숙종 32)에 다시 건립되었는데, 이 건물은 이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곧 지암(智巖) 등 4명의 승려가 공사를 주도하였으며, 성호(性湖)선사가 보광(普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765년(영조 41)에 낡고 무너진 것을 고쳐 지었고, 1876년(고종13)에도 서봉(瑞峰)화상이 도편수를 맡아 고쳐 지었다.「치악산구룡사 보광루중건상량문 병서(雉岳山龜龍寺普光樓重建上樑文幷序)」에는 당시의 공사 내용이 기록되었는데, ‘병자년중창건(丙子年重創建)’이라고 하였다. 기둥 윗부분의 이익공식(二翼工式) 짜임과 화초를 새긴 초각(草刻) 형식으로 보아, 지금의 건물은 이때의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 단청을 보수한 뒤, 1988년과 2008년∼2009년에 부재 일부와 건물 전체를 해체 수리하였다.

내용

평면이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비탈진 지형에 위치하였다. 건물 옆에는 축대를 쌓았고, 누하인 1층의 계단을 통해 대웅전 앞마당으로 오르도록 하였는데, 누상(樓上)인 2층은 출입하기 쉽게 앞마당과 높이를 같게 하였다. 2층 앞면의 모든 칸에는 판벽과 함께 판장문(板長門)2짝을 설치하였고, 판벽을 둔옆면과 달리 뒷면은 모두 개방하였다. 1층에는 기둥 중심선상에 기둥을 모두 배열하였고,2층은 내주(內柱)를 생략한 통간(通間)으로 만들어, 평면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하였다.

기둥은 1층 누하주와 2층 누상주를 구분하여 사용하였는데, 누하주는 껍질만 벗겨내는 정도로 다듬은 자연목에 가까운 둥근 기둥을 사용한 반면 누상주는 깨끗이 다듬은 둥근 기둥을 세워 차이를 보인다. 다만2층 옆면의 가운데 기둥만은 네모 기둥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누하주의 윗부분에는 창방(昌枋)을 설치한 다음 귀틀을 두어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다. 누상주의 윗부분에는 이익공식 짜임을 두어 주심도리를 받도록 하였는데, 초익공은 윗부분에 연꽃을 새긴 앙서형[仰舌形]이고, 이익공은 아랫부분에 연꽃 봉오리를 새긴 수서형[垂舌形]으로 만들었다. 건물 안에는 2단으로 연꽃을 새긴 보아지형으로 초각하여 대들보를 받도록 하였다. 행공(行工)은 끝부분을 비스듬히 자르고 아랫부분을 활처럼 깎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처리하였으며, 보머리에는 봉취형(鳳嘴形)을 새겨 놓았다. 가구는 고주(高柱)가 없는 5량(樑)으로, 대들보[大樑]는 직선에 가깝고, 옆면 가운데 기둥의 윗부분과 대들보 사이에는 짧은 보인 충량(衝樑)을 걸었다. 동자기둥은 기둥형이고, 대공(臺工)은 판대공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지붕의 박공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 천장은 중도리를 중심으로 바깥쪽은 연등천장이고, 안쪽은 우물천장이다. 건물 전체에는 가장 화려한 형식의 금모로단청(錦毛老丹靑)을 하였다.

특징

이 건물에는 중도리 안쪽에만 우물천장이 설치되었는데, 여느 사찰의 누강당(樓講堂)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또한 맞배지붕에서 충량을 사용한 것도 이 건물만의 구조적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이 건물은 비탈진 지형을 이용하여 지었는데, 1층의 누하를 통해서 앞마당으로 진입하도록 한 전형적인 누강당이다. 특히 화려하게 장식된 익공은 조선 말기인 19세기 말 사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구룡사 보광루 해체실측수리공사 보고서』(원주 구룡사, 2009)
『2006년도 문화재수리보고서』─도지정문화재(강원도, 2009)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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