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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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삼국시대, 대가(大加) 예하 실무 조직의 직명(職名)으로 사용되기도 한 고구려의 관등.
제도/관직
설치 시기
삼국시대
내용 요약

사자(使者)는 삼국시대에 대가(大加) 예하 실무 조직의 직명(職名)으로 사용되기도 한 고구려의 관등이다. 계루부가 다른 나부를 견제하고, 나부의 중심세력이 부 내의 다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고 보는데, 구체적으로는 조세 수취를 담당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사자의 관명은 대사자와 사자로 분화되어 고구려 관등제의 한 축을 이루었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대가(大加) 예하 실무 조직의 직명(職名)으로 사용되기도 한 고구려의 관등.
내용

고구려의 관명으로, 국가 차원의 관등(官等)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가(大加) 예하 실무 조직의 직명(職名)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에는 국왕뿐만 아니라 대가들도 사자(使者), 조의(皂衣), 선인(先人)을 둘 수 있다고 하였다. 초기 고구려는 독립된 정치체들의 주1적 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파악되며, 고구려를 구성한 각급의 정치체들은 각각 통치의 실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갖추었을 것이다. 대가 예하의 사자, 조의, 선인이 바로 그것이다.

사자의 성격에 대해서는 계루부가 다른 나부를 견제하기 위하여 설치한 직책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나부의 중심세력이 부 내의 다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2를 수취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대가의 실무 조직은 국가 권력의 수립과 왕권의 확대 과정에서 고구려 국가 차원의 조직으로 개편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자의 관명도 대사자(大使者)와 사자로 분화되어 고구려 관등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사자계 관등은 중후기 관등제의 정비 과정에서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 발위사자(拔位使者), 상위사자(上位使者) 등으로 분화되었다. 한편 부여(夫餘)에서도 사자, 대사자, 대사 등 사자계 관명이 확인된다. 계루부 왕실을 포함한 다수의 부여계 세력 집단이 고구려의 국가 형성에 참여하고 있었던 사실과 관련하여 부여의 관제가 고구려 관제에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지(三國志)』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여호규,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신서원, 2014)
금경숙, 『고구려 전기 정치사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4)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연구』(한나래, 2004)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 1999)

논문

장병진, 「고구려 전기의 지배세력 재편과 관등제」(『한국고대사연구』 99, 한국고대사학회, 2020)
조영광, 「고구려 초기 관등의 기원과 성격에 대하여」(『사학연구』 119, 한국사학회, 2015)
김광수, 「고구려 고대집권국가의 성립에 관한 연구」(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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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田幸男,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朝鮮學報』 86, 1978)
주석
주1

여러 층.    우리말샘

주2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하여 국민이나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 국세와 지방세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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