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사상사의 흐름에서 삼재론(三才論)은 『역전(易傳)』인 십익(十翼)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삼재론은 자연적 구성 요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천지에 인간을 참여시킨 것으로서, 인간의 위치를 천지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인간 중심적 사조가 삼재론 형성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주대(周代)의 인문주의적 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인도주의적 가치관을 확립한 공자에 이르러 인간은 윤리의 주체로 서게 되었다. 그리고 『역전』·『중용』·『예기』 등을 통하여 인간은 사회적인 도덕 주체의 위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지와 함께 우주와 세계
창조의 주체자로 인식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상적 흐름 속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삼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유학의 흐름 가운데서 삼재론은 그 이후 큰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는 삼재론을 이루는 구성 요소 가운데 지의 개념이 약화되면서 천에 포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삼재 가운데 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천과 인에 대한 독립적인 자격을 상실하고 천에 종속됨으로써, 그 뒤 삼재론은 천인론으로 사상적 구조와 내용을 바꾸게 되었다.
다만, 중국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주역』 가운데 삼재론은 음양론과 함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64괘의 초효(初爻)와 2효는 지, 3효와 4효는 인, 5효와 상효(上爻)는 천으로 6효가 천지인의 삼재를 상징하고 있으며, 『주역』 계사(繫辭) 설괘전(說卦傳)에서는 각각 천도(天道)를 음양(陰陽), 지도(地道)를 강유(剛柔), 인도(人道)를 인의(仁義)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한국 사상사에서 삼재론은 초기 단군신화 속에 이미 그 원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 와서 단군신화는 주로 천인합일 또는 천인본일(天人本一)의 구조로 이해하지만, 좀 더 세밀히 파악할 때는 천지인의 삼재론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을호(李乙浩)는 환인(桓因)을 천, 환웅(桓雄)을 지, 환검(桓儉)을 인으로, 또는 환인을 천, 환웅을 인, 환검을 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환웅을 천, 웅녀를 지, 단군을 인으로 보는 삼재론적인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단군신화의 이러한 삼재론적 구조는 한국 사상사의 저류로 흐를 뿐 구체적인 논리로 전개되지는 못했으며, 후기에 유학 사상과 성리학의 수용 이후에도 주로 천인론으로 변용된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역시 중국 사상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의 개념이 약화된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실학 사상이 형성된 뒤 이런 경향에 대한 반성이 생겨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 대하여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요소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내용을 삼재론의 측면에서 해명하여 경제와 윤리의 조화를 시도한 사상가로 이원구(李元龜)가 있다.
그는 “9도(九道)와 6사(六事)는 천지인 삼재의 요도(要道)요 묘결(妙訣)이다”라 하여, 하늘에 근거한 인륜과 땅에 근거한 산업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천에 종속되었던 지를 새롭게 부각시킨 것으로, 새로운 삼재론의 해석이며 재정립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