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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별곡(霜臺別曲)

    고전시가작품

     조선 초기에 권근(權近)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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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장가사 / 상대별곡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 초기에 권근(權近)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총 5장.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되어 있다. 주로 궁중에서 연악(宴樂)으로 쓰이던 송도가(頌禱歌)로서 악장문학에 속한다.
    제목에 보이는 상대(霜臺)는 사헌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작자가 1399년(정종 1) 대사헌을 맡았으니, 그 뒤의 어느 시기에 사헌부에서 하는 일을 칭송한 이 노래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장체(聯章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1장부터 4장까지는 경기체가의 정격(正格) 형식을 정연히 지켰으나, 끝의 5장은 형식을 상당히 벗어나 변격(變格)으로 되어 있다.
    『용재총화(慵齋叢話)』권1에는 사헌부에 등청하는 광경부터 시작하여 방주(房主) 감찰의 임무와 신관을 맞는 까다로운 여러 절차에 따른 신참례(新參禮)가 해학 넘치게 묘사되어 있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사헌부는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는 기관이다. 서릿발 같은 기세로 새 왕조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찰하고 엄격한 질서를 수립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으니, 거기서 일하는 관원은 차림새가 대단히 엄격하고 자부심도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하는 취지를 펴기 위해 이 작품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1장에서는 새 왕조의 도읍터가 천년승지임을 말하였다. 이어서 서울의 거리와 사헌부의 엄숙한 기풍 및 관원들의 기상과 자기과시를 노래했다. 2장에서는 사헌부 관원들이 관청에 출근하는 광경에서 씩씩하고 믿음직한 자태를 묘사하였다.
    3장은 임금의 현명함과 신하의 충직한 모습을 그리면서 태평성대를 기린 것이다. 4장에서는 관원들이 일을 끝내고 술잔치에서 즐기는 장면을 노래하였으며, 5장에서는 어진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들이 어우러진 태평성대에 훌륭한 인재들의 모임이 더욱 좋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사헌부에서 하는 일을 하나씩 서술하면서 자부심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제시하였다. 5장은 이러한 감격을 총괄하느라고 경기체가의 특유한 형식에서 이탈한 것이다. 격정적인 감정의 표출은 형식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장르상으로 볼 때는 경기체가에 귀속된다. 형성기의 경기체가로서 장르양식을 굳혀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또, 경기체가 최초의 작품인 「한림별곡(翰林別曲)」의 표현양식을 적극 수용한 점에서 두 작품 사이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상대별곡」은 ‘군명신직지사(君明臣直之詞)’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성종대의 연향에서 가창되었고(『성종실록』권 200), 사헌부의 소미연(燒尾宴)주 01)에서나(『증보문헌비고』권 107), 사헌부 관원들의 주연에서도 노래로 불렸다는 기록(『용재총화』)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려가요의 연구  (이명구, 신아사, 1973)

    • 「별곡체가의 보편적성격고찰」(김창규,『서수생선생환갑기념논총』,1981)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선비의 자제가 처음으로 진사에 합격한 때 행하는 잔치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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