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준비는 1982년 4월 23일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SAGOC)가 발족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 이 조직위원회는 1983년 2월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SLOOC)와 통합되어 사무처가 사무총장, 사무차장 3명, 1본부장과 1실 13국 58과 규모의 기구가 확정되고, 기능별로 업무를 관장하는 등 세 차례의 대표적인 기구 개편작업을 단행하였다.
1984년 2월 29일 대회기간이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로 결정되면서 준비작업도 본궤도에 접어들었으며, 1985년 4월 볼링경기장 완성과 우승메달 디자인 확정, 대회가 및 팡파르 결정, 성화봉송코스 확정 등 대회 막바지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처음 대회규모를 참가 예정국 33개 국, 참가인원(선수·임원·보도진 포함) 1만1900여 명, 관광객 16만 명으로 각각 추정하고, 대회운영 요원 5만8835명의 확보와 업무별 배치 등 소요인력 파악과 활용방법 등을 잠정 결정하였다. 또, 1,023개 품목의 1978억 원에 달하는 소요물자를 확보하고 이에 대한 관리계획을 세웠으며, 별개의 업무로 분담하여 차질 없도록 준비에 들어갔다.
이 밖에 경기운영요원 6,605명을 확보, 연도별로 해외파견·전문가 초청·자체교육을 통해 훈련을 실시하였다. 1986·1988년 양대회에 필요한 36개 경기장은 기존시설 20개를 보수 활용하도록 하고, 1984년 올림픽 주경기장과 수원실내체육관을 완공했으며, 나머지 14개 경기장을 1986년 6월 이전에 모두 준공하였다.
또, 메인프레스센터(MPC)·아시아방송센터(ABC)·아시아선수촌을 개막 직전에 완공하여 모든 시설을 마무리하였다. 대회조직위원회는 대회를 치르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경비를 자체사업으로 조달한다는 원칙 아래, 휘장사업·입장권판매·기념주화판매·기념메달판매·복권사업 등을 전개하였다.
대회의 모든 준비상황은 6월 실제의 경기장에서 아시아경기대회와 같은 방식으로 치러진 전국체육대회를 통하여 총점검하였으며, 노출된 일부 시설상의 미비점과 진행상의 문제점을 대회개최 전에 완전 보완, 개선하였다.
- 3.1. 대회경비(재정)
1986·1988년 양 대회에 투자한 총비용은 직접사업비 1조 3,286억 원, 여건조성 사업비 1조 811억 원 등 모두 2조 4,097억 원에 달하였다. 이는 1964년 동경올림픽의 11조 4,000억 원 규모의 5분의 1에 해당하며,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의 2조 1,000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총투자비용 중 여건조성 사업비 1조 800억 원은 대회 유치 전에 이미 정부의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에 반영해서 추진되어 온 것이다.
또 직접사업비 중에서도 대회 유치 이전부터 추진되어 온 서울종합운동장 등 경기장 건설비 839억 원과 민자(民資)로 충당된 요트·승마 경기장, 선수촌아파트 건립비용 등 4970억 원을 제외하면 순수한 대회준비 개최비용은 7477억 원이다. 이 중 시설건설·장비구입에 53%인 3931억 원, 행사진행·의무·홍보·수익 사업운영 등에 3546억 원이 투입되었다.
주요 수입원은 텔레비전방영권판매·복권판매·휘장사업·기념주화판매·아파트분양·입장권판매, 각국 선수단 입촌비·기념품판매 등으로 충당되어 양 대회 수익사업은 1986년 5월 말 80.3%가 달성되었다. 텔레비전 방영권 판매에서는 아시아경기대회가 95만5400달러(8억5000만 원)의 수입을 잡았고, 서울올림픽에서는 미국 텔레비전의 최소 보장액이 예상보다 적은 3억 달러선에서 타결이 되었지만, 총예산 7477억 원은 무난히 확보하였다. 또, 부대수익으로 적어도 100억 원 이상의 관광수입을 얻었다.
- 3.2. 경기장
대회에 사용된 33개의 경기장과 54개의 연습장 등은 역대 대회사상 가장 완벽하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33개 경기장 가운데 새로 지은 것은 올림픽공원 내의 사이클 벨로드롬경기장을 비롯하여 역도·체조(배드민턴 겸용)·펜싱·테니스 경기장과 부산 수영만의 요트계류장 등 모두 15개 소이며, 나머지는 기존시설을 확충, 보완하여 사용하였다. 연습장도 수영·배구의 새마을본부 체육관, 한강 시민공원 육상장 등 7개만을 신설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각급 학교나 실업팀의 기존체육관으로 충당하였다.
서울아시아경기대회의 시설은 특히 주경기장과 잠실체육관·학생체육관·수영장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고, 체조·역도·펜싱·테니스·사이클 경기장이 올림픽공원 안에 모여 있어, 선수단의 이동이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주요 경기장(잠실올림픽스타디움)은 10만 관중(입석 포함)을 수용할 수 있는 초현대식의 웅장한 규모로 세계의 어느 경기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 3.3. 선수촌
잠실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위치한 선수촌은 5,000여 명의 선수단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아파트 18개동)와 대형식당·국제센터·종교관·병원·행정센터·본부건물 등의 시설을 모두 갖추었다. 또 1,5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하루 5,000cal를 기준으로 하여 뷔페식으로 음식을 제공하였다.
국제센터에는 우체국·전신전화국·자전거수리소·쇼핑센터·세탁소·이발소·미용실·은행·수영장·탁구장·전자오락실·극장·디스코테크 등 모든 편의시설을 갖추었으며, 병원은 8개 진료과목으로 30개 입원실을 구비하였다. 종교관에는 기독교(개신교)·가톨릭·이슬람교·불교관을 두고 24시간 개방하였다. 식당은 당초 예상보다 3만 명이 늘어난 연인원 23만 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선수촌 운영 33일간 편의·위락 시설을 이용한 선수와 임원은 17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 3.4. 메인프레스센터와 아시아방송센터
지하 1층, 지상 5층의 한국전력 별관건물을 활용한 메인프레스센터(MPC)는 기자실·통신송고실·회견실·등록센터 및 언론사별 개별 사무실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국내외 보도진의 취재·송고·사진 등의 주요 업무를 지원하였다.
메인프레스센터는 경기장과 선수촌 등 29개 서브프레스센터(SPC)와 전화·팩시밀리·종합정보망 등 각종 시설로 연결되어 신속, 정확한 취재를 지원하였고, 경기 결과를 비롯한 정보자료를 원활하게 제공하였다. 또, 사진취재 지원을 위한 현상소와 카메라수리소를 부대시설로 갖추었으며 사진전송기를 설치하였다.
여의도 KBS건물 옆에 있는 아시아방송센터(ABC)에는 30여 개 나라에서 55개 방송기관이 참여, 대회의 생생한 모습을 국내외에 송출하였다. 아시아방송센터는 6월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국제신호를 이용한 ‘주관방송’ 제도를 시험운영하고, 이를 이번 대회에 과감히 채택, 깨끗한 영상과 음질 및 음향을 내보내어 큰 호평을 받았다.
- 3.5. 전산시스템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 사용된 각종 전산시스템은 모두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것으로 종합정보망(INS)과 경기정보시스템(GIONS)이 연결, 이용되었다. 478대의 터미널과 228대의 프린터로 구성된 종합정보망은 29개 경기장·메인프레스센터·아시아방송센터·선수촌 등 60여개 소에 설치되었으며,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사용된 전자정보교환시스템(EMS)보다 빠른 시간(경기종료 후 7분 이내)에 자료를 송출하는 한편, 위성정보통신망을 통해 동일한 서비스를 신속히 제공하였다.
- 3.6. 안전(보안)대책
북한의 방해공작 가능성 등 분단국가의 특수상황을 고려한 유례없는 철저한 안전조처가 취해졌다. 특히, 김포공항 폭파사건 이후 경비경호는 더욱 철저히 취해졌다.
고위 임원에서 실무 운영요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회관계자가 검문검색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금속탐지기와 고성능 엑스레이투시기·등록카드감식기 등 각종 최신보안장비의 활용은 물론, 경비견(警備犬)까지 동원하였다. 특히, 선수촌과 메인프레스센터 등 주요 시설물에는 이중삼중으로 검문검색을 실시하여 안전대책에 만전을 기하였다.
- 3.7. 교통 및 숙박
선수단과 보도진, 기타 대회관계자들을 위해 전용버스·셔틀버스·전용승용차 등을 제공하는 한편, 주요 행사장 주변의 일반 교통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교통소통에 원활을 기하였다. 특히,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모여드는 개·폐회식 등 대규모 행사에는 시민에게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을 권장하여 교통체증을 덜 수 있었다.
대회기간중 지하철을 이용한 승객이 평소보다 하루 17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 숙박시설은 선수단을 위한 선수촌 외에 18개 시내호텔을 지정, 객실을 확보하여 보도진 등 대회 관계자의 이용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었다.
- 3.8. 위생 및 방역대책
보건당국은 경기대회를 통해 우리나라의 보건위생 수준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한편, 이를 ‘생활올림픽’의 차원에서 준비한다는 계획 아래 대대적인 작업을 추진하였다. 1985년 3월 보건사회부 환경청, 요식업중앙회 등 14개 유관단체가 ‘생활올림픽추진단’을 결성하고 방역반(14개 반, 28명)·접객업소반(22개 반, 51명)·공중변소반(6개 반, 23명) 등을 편성, 광범위한 점검 및 보완·개선을 유도하였다.
- 3.9. 관광·기념품
이 대회는 우리나라 관광업을 해외에 홍보하는 데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대회에 참가한 임원 및 선수들에 대한 선전효과 외에도 외국 텔레비전과 신문들이 서울대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우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으며, 그 효과가 관광에도 크게 파급되었다.
대회 기간중 외래관광객은 모두 14만3668명으로 당초 예상 16만 명에는 못 미쳤지만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여 8.6%가 늘어난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관광공사는 199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던 외래관광객 200만 명 유치, 외화수입 18억 달러의 목표를 1988년에 앞당겨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행사에 대비하여 개발한 26개의 관광코스 중에서 서울의 고궁, 민속촌, 강화도 인삼밭, 판문점 등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특히, 서울시내 관광코스는 반나절 코스 5개, 하루 코스 3개, 야간 코스 4개 등으로, 종류를 다양하게 하면서 문화유적지와 올림픽시설을 연계하여 각각 그 특징을 살렸다.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많은 종류의 대회기념품을 개발, 생산하였는데, 이 가운데 호돌이인형 등이 특히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대회기간중 23개 시중은행을 통해 다섯 종류의 기념주화가 발매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