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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宣陵)

고려시대사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전기 제8대 현종의 능.   북한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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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전기 제8대 현종의 능.북한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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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북한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북한의 보존급유적 제547호로 지정되어 있다.『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제8대 임금 현종은 1031년(현종 22) 5월 중광전(重光殿)에서 승하하여 송악산(松岳山) 서쪽 기슭에 장례 지냈다 한다. 선릉은 낮은 구릉의 중턱에 남향으로 위치하였고, 영역은 980㎡(약 300평) 정도이다. 능역은 능 앞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산기슭을 다듬어서 장축을 동서로 하는 장방형의 4층단으로 축조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제1층단의 중심 부위에 봉분이 자리 잡고 있다. 봉분은 먼저 병풍석(屛風石)을 12각으로 축조한 위에 조성했고, 봉토의 높이는 225㎝, 직경은 900㎝이다. 병풍석은 지대석(址臺石)·만석(滿石)·면석(面石)·우석(隅石)·인석(引石) 등으로 구성되었고, 지대석은 매몰되어 있다. 면석에는 12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었고, 머리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조복을 입었으며 홀을 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인석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조각들의 대부분은 마멸되어 그 모습을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렵다. 지면에 드러난 병풍석의 면돌 높이는 26.5㎝이고, 두께는 25㎝이다. 만석의 높이는 23.5㎝이다. 병풍석 한 변의 길이는 230㎝이다. 현재 병풍석의 일부 구간은 1963년 이전에 보수할 때 잡석으로 보충했던 것 같다.
병풍석에서 밖으로 100㎝ 지점에 그와 병행하여 능의 주위를 따라 12각형으로 난간석을 돌렸다. 역시 모가 죽은 방형의 돌을 깎아서 기둥을 만들어 12각의 매 모서리마다 세우고 그 가운데 동자석주(童子石柱)를 놓고 난간 가로대를 걸쳐 놓았다. 그런데 현재 난간 기둥들은 대부분 없어지고 5개만 남아 있으며, 지면에 드러난 높이는 40㎝ 정도이다.
1963년 조사 당시에는 석수(石獸) 3기가 있었는데, 동쪽 뒤의 것은 잔등만 노출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매몰되어 있었다. 봉분 앞 상석(床石)은 넓지만 거친 잡석을 한 장 놓았고, 상석 앞에는 난간석주(欄干石柱) 1개가 서 있는데, 1963년 이전 보수할 당시에 잘못 배치된 것이었다. 동서 양켠에는 8각 돌기둥 형태로 된 망주석(望柱石) 1쌍이 마주 서 있다. 그리고 1867년(조선 고종 4)에 세운 묘표석이 서 있다.
제2층단의 동서 양켠에는 문인석(文人石) 1쌍이 마주 보며 서 있는데, 심하게 훼손되었고 인위적으로 파손된 부분도 있다. 높이는 212㎝이고, 얼굴 너비는 36.5㎝이며, 얼굴 두께는 40㎝이다.
제3층단에도 2단의 문인석과 일직선상에 문인석 1쌍이 서 있다. 동쪽에 있는 문인석의 높이는 199㎝이고, 얼굴 너비는 35㎝이며, 얼굴 두께는 34㎝이다. 1963년 조사 당시 문인석 1쌍이 제3단이 아닌 제4층단에 위치해 있어서 제3층단이 비어져 있었다. 또 1쌍의 문석인이 서로 마주보지 않고 동쪽 문인석이 남향하여 있었다. 이밖에도 고려 왕릉의 기본 구조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 많았는데, 현재는 바로잡혀져 있다. 아래쪽 제4층단에는 정자각(丁字閣) 터가 있는데, 1963년에는 초석 2개와 기와 파편이 남아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나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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