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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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소재 석조십이지신상
경주박물관 소재 석조십이지신상
조각
개념
궁전이나 무덤에 두는 석조 동물상 또는 무덤의 호석이나 석탑의 기단부에 등에 놓거나 부조한 동물 형상의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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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궁전이나 무덤에 두는 석조 동물상 또는 무덤의 호석이나 석탑의 기단부에 등에 놓거나 부조한 동물 형상의 석조물.
내용

석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의 후한(後漢)대에 후장(厚葬)의 풍습에 따라 묘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짐승을 조각하여 묘 앞이나 둘레에 세웠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풍습이 제도적으로 엄격하게 정착된 것은 당나라에 이르러서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 나라에도 그와 같은 풍습이 전해져 석수가 조성되었음을 현존하는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작품은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 발견된 석수이다.

이밖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묘 앞에 석수를 세우거나 묘 둘레에 호석으로 석수를 배치하는 풍습이 성행함에 따라 현재 많은 예들이 남아 있다.

단독상으로 조성된 석수 중에서는 석사자상(石獅子像)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성덕왕릉(聖德王陵)·괘릉(掛陵)·흥덕왕릉(興德王陵) 앞의 석사자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우수한 조각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사자상은 또한 불교적인 조형 미술품으로 많이 제작되어 불국사다보탑(국보, 1962년 지정)의 사자나 의성관덕동석사자(보물, 1963년 지정)와 같이 원각상(圓刻像)도 있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1963년 지정)·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등의 사자상과 같이 석탑의 기단부에 이용된 것,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1962년 지정)·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 1962년 지정) 등의 사자상과 같이 석등의 받침으로 이용된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밖에 불상대좌라든가 석탑·부도·석등·석비 등의 기단 혹은 대석(臺石)에 양각하여 장엄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자 이외의 동물상으로는 석마(石馬)·석양(石羊)·석호(石虎)·석우(石牛) 등이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의 능묘 앞의 수호상으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궁전 앞에는 석해태를 세워 화재 예방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능묘의 호석으로 사용된 석수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십이지상(十二支像) 조각을 들 수 있다. 십이지상은 자(子, 쥐)·축(丑, 소)·인(寅, 범)·묘(卯, 토끼)·진(辰, 용)·사(巳, 뱀)·오(午, 말)·미(未, 양)·신(申, 원숭이)·유(酉, 닭)·술(戌, 개)·해(亥, 돼지)의 12가지 동물을 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능묘에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것은 10여 군데에 이른다. 이들은 주로 부조로 많이 표현되었으나 성덕왕릉의 십이지신상처럼 원각상도 있다.

석수는 궁전이나 능묘 등을 수호하는 조각상이다. 당시의 조각 양식의 경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조각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능묘 제도 및 왕궁 제도 연구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집필자
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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