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육두품가문에서 출생하여 진골이 아니면 대신·장군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분통히 여겨 중국에 가서 크게 출세할 것을 기약하였다.
621년(진평왕 43) 몰래 배를 타고 당나라에 건너가 645년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출정하였을 때 종군을 자청하여 좌무위과의(左武衛果毅)가 되어 요동 안시성(安市城) 부근 주필산(駐蹕山) 밑에서 고구려 군대와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태종은 그가 신라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의(御衣)를 벗어 시신을 덮어주고 대장군의 관직을 내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당시 신라의 골품제도가 육두품 이하 하급귀족들의 커다란 불만의 대상이었음을 말하여주는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