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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풍요(昭代風謠)

한문학문헌

 조선후기 시인·역관 고시언과 채팽윤이 위항시인의 시편을 정리하여 1737년에 간행한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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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시인·역관 고시언과 채팽윤이 위항시인의 시편을 정리하여 1737년에 간행한 시선집.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9권 2책. 활자본. 1737년(영조 13)에 간행되었다. 고시언(高時彦)이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선집작업을 한 사람은 채팽윤(蔡彭胤)이다. 고시언은 간행에 참여하였으나 마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오광운(吳光運)의 협조로 마무리한 것 같다.
현재 유포되고 있는 것은 『풍요삼선(風謠三選)』을 편찬할 때(1857년, 철종 8)에 산망(散亡)주 01)될 것을 우려하여 그 이듬해에 다시 인출한 중인본이다. 1980년 아세아문화사에서 『풍요속선』과 함께 『한국한시선집 3』으로 영인되어 보급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소대풍요』는 162인의 시편 685수가 시체에 따라 선집되어 있다. 수록된 시인은 중인·서인을 비롯하여 상인·천예 출신까지도 망라되어 있다. 그 중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의역(醫譯)중인과 서리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의역중인은 “하대부 가운데 일등인 사람이다(下大夫一等之人).”라고 지칭되어 그 역할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소대풍요』는 『해동유주(海東遺珠)』를 토대로 하여 증선(增選) 속보(續補)한 것이다. 이 책에 이르러 조선 초기부터 숙종 때까지의 위항시인의 시편을 정리하는 작업이 일단 마무리된 셈이다.
『소대풍요』는 홍유손(洪裕孫)·박계강(朴繼姜) 등의 조선조 초·중기 명가들의 작품에서부터 유희경(劉希慶)의 「월계(月溪)」, 백대붕(白大鵬)의 「구일(九日)」, 최기남(崔奇男)의 「염체(奩體)」, 최대립(崔大立)의 「상실후야음(喪失後夜吟)」 등의 명편이 수록되어 있다.
해동유주의 편자인 홍세태(洪世泰)의 작품은 시체별로 여러 편이 수록되어 있다. 별집(別集)에는 이 책의 편찬에 참여한 고시언의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소대풍요』를 모델로 위항시인의 이름을 사후까지 전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주갑(週甲) 때마다 속집을 간행하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하여 그 1주갑이 되는 1797년(정조 21)에는 『풍요속선(風謠續選)』 7권 3책이 간행되었다. 그 2주갑이 되는 1857년에는 『풍요삼선』이 나왔다.
『소대풍요』의 성격은 고시언의 제사(題辭)에 잘 나타나 있다. 고시언은 이 책이 사대부의 『동문선』과 표리관계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인위적인 신분에는 귀천이 있지만, 하늘이 준 노래는 같은 소리라 하여 위항인들의 시적 자부심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위항시인들은 시문 양식에 있어서 그들 나름의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전통적인 사대부층의 시문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소대풍요』에 수록된 시편의 대부분이 금체시로 채워져 있는 것도 시대의 풍상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배율과 같은 장편은 찾아볼 수 없고 고체시에 있어서는 『육가잡영(六家雜詠)』의 6인 시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대풍요』는 작가의식에 있어서도 현실문제에 대한 인식이 대개 회고적인 감상으로 흐르고 있어 스스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역대한시선집(歷代漢詩選集)의 문학사적(文學史的) 의미(意味)」(민병수,『관악어문연구』7,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1980)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흩어져 없어짐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민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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