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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왕후(神懿王后)

조선시대사인물

 고려후기 제1대 태조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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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왕후탄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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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제1대 태조의 왕비.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안변(安邊). 증문하시랑찬성사(贈門下侍郎贊成事) 한유(韓裕)의 증손이고, 증문하좌정승(贈門下左政丞) 한규인(韓珪仁)의 손녀이며, 증영문하부사(贈領門下府事) 한경(韓卿)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405년(태종 5)에 세운 제릉(齊陵)의 비문에 따르면, 신의왕후는 “천자(天資)가 현숙하고 아름다우며 곤덕(坤德)이 유순하고 발라서[正] 일찍이 용연(龍淵)에 빈(嬪)이 되어 왕업을 도와 이루게 했으며, 성철(聖哲)을 낳아서 대통을 끝없이 전하니 신이한 공과 아름다운 의범(儀範)이 옛사람과 비교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신의왕후의 외향인 안변은 산천이 육령(毓靈)주 01)한 상서로운 지역이다. 이곳 남쪽 수리쯤에 풍류산(風流山)이 있는데, 신의왕후의 삼조(三祖)가 묻힌 곳이다. 원래 이름은 청학산(靑鶴山)인데, 신의왕후가 태어날 때 풍류지음(風流之音)이 3년이나 끊이지 않았다 하여 풍류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성계(李成桂)에게 시집와서 함흥 운전리(雲田里)에 세거하였다. 1364년(공민왕 13)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로서 삼선(三善)·삼개(三介)의 난을 토평한 공로로 봉익대부밀직부사(奉翊大夫密直副使)에 오르고, 단성양절익대공신호(端誠亮節翊戴功臣號)를 받자 원신택주(元信宅主)에 봉해졌다.
우왕 대에는 포천의 재벽동(滓甓洞) 전장(田莊)에 거주했고,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때 동북면으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1391년 정국의 동요로 상심하여 병을 얻어 9월 12일 55세로 죽자, 해풍군(海豐郡) 치속촌(治粟村)에 장사지냈다.
1398년 신의왕후의 기신재(忌晨齋)를 장의사(藏義寺)에서 베풀었다. 3년 뒤에는 화상을 인소전(仁昭殿)에 봉안하고 태조가 친히 치제하였다. 1400년에 신의왕후의 진영을 광명사(廣明寺)로 옮겼고, 1405년에는 옛 세자전을 인소전으로 삼아 진영을 옮겼다. 그 뒤 1410년에 태조강헌대왕과 신의왕후의 진영을 문소전(文昭殿)에 봉안하였다.
1411년 9월에 신의왕후의 기신재를 흥덕사에서 베풀었는데, 태조강헌대왕과 신의왕후의 기신재에는 의정부와 대언사(代言司)가 모두 참여하는 제행의(祭行儀)를 새로 정해 설행하였다. 1416년 9월에 세자(세종)에게 흥덕사로 가서 기신에 소향(燒香)하게 하였다.
본래 환조(桓祖)의 구택인 영흥의 본궁(本宮)에는 별도로 태조와 신의왕후의 위판(位版)을 봉안했는데, 1696년(숙종 22) 신덕왕후의 삭망제(朔望祭)와 별제(別祭)에는 내수사(內需司)에서 공진물(供進物)을 분급하는 예행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에 앞서 1398년(태조 7) 정종이 즉위하자 11월에 절비 한씨를 신의왕후라 추존하고, 1408년(태종 8)에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라고 시호를 높였다.
그 뒤 1683년 제왕후의 시책(諡冊) 중에 신의왕태후와 원경왕태후(元敬王太后)주 02)만이 태(太)자가 있어 미편(未便)함이 논의되어 승인순성신의왕후·창덕소열원경왕후(彰德昭烈元敬王后)로 각각 개책(改冊)한 바 있다.
1824년(순조 24)에 첨지 한철제(韓喆濟)의 소청으로, 다음 해에 신의왕후의 탄강지인 안변부익위사(安邊府翊衛社)에 신의왕후 탄강구기비각(誕降舊基碑閣)을 낙성하였다.
조선이 개국한 다음날(태조 1년 7월 17일) 한씨의 시호를 절비(節妃)라 추존하였다. 능호는 제릉으로, 경기도 개풍군 상도면 풍천리에 있다. 능을 개풍으로 정한 것은 조선 건국 이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뒤에 능직(陵直)으로 권무관(權務官) 두 사람을 배정하고 수릉군(守陵軍) 50호를 두었는데 매호에 토지 2결씩을 지급하였다. 능의 동쪽 마을에 제궁(齊宮)을 창건해 이름을 초경사(肖慶寺)라 하고 교종(敎宗)에 속하게 했으며 전 200결을 배속하였다.
소생으로는 정종·태종을 비롯하여, 이방우(李芳雨)·이방의(李芳毅)·이방간(李芳幹)·이방연(李芳衍) 등의 6남과 경신(慶愼)·경선(慶善) 등 두 공주가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신령스러움을 기름.
주02
태종비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박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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