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처랑(突處郎)’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진평왕 때의 제6화랑인 그가 동료 화랑들인 거열랑(居烈郎)·보동랑(寶同郎) 등과 함께 금강산으로 놀러 가려 할 때에 혜성이 나타나 심성(心星)의 큰별자리를 범한고로 그들은 이를 의아하게 여겨 여행을 중지하려고 하였다.
이때 이름난 향가작가인 융천사(融天師)가 이른바 「혜성가(彗星歌)」를 지어 부름에 혜성이 곧 사라질 뿐만 아니라 신라 국경 안으로 침입한 일본군 또한 물러가서 국왕은 기뻐하여, 그들을 놀러 보냈다.